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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Nov 03. 2020

[영화] 어느 가족

가족이란 무엇인가


어느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2018)







다소 엉뚱하고 말이 안 되는 설정의 영화는 실제 일본 도쿄에서 부모의 죽음을 숨기고 노후 연금을 챙겼던 어느 가족의 실화에서 시작되었다. 감독은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오랫동안 고민한 후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 같은’ 형용사를 붙이면 왠지 사랑과 포용이 가득할 것 같다. 하지만 또 ‘가족 같은’ 회사는 다니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일종의 착취와 희생의 의미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영화는 사회 부적응자로 보이는 이들이 함께 모인 새로운 가족을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남편으로부터 버려진 후 그가 남긴 연금으로 살아가는 노인,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으로부터 도망친 한 여자와 그녀를 사랑한 남자, 부유하지만 숨 막힐 것 같은 집안에서 도망쳐온 학생, 길바닥에 버려져 기억을 잃어버린 아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연약한 꼬마.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상처 입는 자들은 이 낡고 작은 집에서 포용되고 치유된다.

그 모두는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는’ 것처럼 마치 운명처럼 단단하게 묶인 사슬을 풀고 자유롭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했다. 그 열망이 가난했지만 함께라서 즐겁고 어떠한 고난도 묵묵히 이겨내며 살아가는 진정한 가족이 된 것이다. 이 가족은 서로에게 특별한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에 그들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며 가진 것을 나눈다. 또한 가족이란 이름으로 함부로 침범당하던 각자의 세계는 온전하게 보호된다.





사랑만으로 충분할까


더없이 행복해 보이던 ‘새로운 가족’은 결국 해체된다. 이 새로운 가족의 막내 유리는 부모로부터 아동폭력에 시달렸지만 유치원에서는 활발하고 귀여운 아이였다. 유치원에서 유리가 사라진 것을 알고 실종 신고를 했고, 그 사건은 방송이 나가면서 큰 화제가 된다. 그것을 지켜본 새로운 가족은 유리의 “가기 싫다”는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 새 옷을 훔치고 새 이름을 지어주는 것으로 완전히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사랑과 포용으로 가득한 가족의 문제는 건강한 미래를 품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로운 가족의 하나 뿐인 아들이자 유리의 오빠 역할을 하던 쇼타는 항상 간식거리를 훔치던 동네 구멍가게에서 유리에게 물건을 몰래 들고 나오는 방법을 가르친다. 어느 날 구멍가게 주인아저씨는 물건을 몰래 훔쳐 나가는 쇼타에게 과자를 더 주며 “여동생에게는 도둑질을 시키지 마라”라고 한다. 쇼타는 혼란에 빠진다. 이후에 쇼타는 유리가 도둑질을 하는 것이 싫어진다.


결국 쇼타는 마트에서 일부러 티 나게 도둑질을 해 직원에게 잡힌다. 경찰은 이 특별한 가족의 실체를 알게 되고 유리의 실종사건도 해결된다.

경찰 조사에서 노부요가 “버려진 아이를 키웠다”는 말에 “그것이 바로 유괴입니다”라는 경찰의 답변처럼 그들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가족은 사랑 또는 연민의 감정으로만 충분한 집단이 아니다. 아이들은 웃음을 얻었지만, 그 안에서 소멸하고 있었다. “도둑질 밖에 가르칠 것이 없었다”는 오사무의 말처럼 아이들은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있었다.

유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지만 부모로부터 방치되고 폭력에 시달린다. 이런 유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낳았다고 모두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은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자들로부터 무분별하게 망가지는 가족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이 영화 역시 가족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그 구성원과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다.

출산율 저하와 가족의 해체. 어쩌면 지금 우리 스스로 ‘어느 가족’에게나 마땅히 있어야 하는 것들을 없애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keyp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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