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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Aug 03. 2021

궁극의 원칙

후에 지금 이 시간을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K는 습관적으로 오늘도 여전히 이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바르게 살고 있다고 자신을 해왔으나 그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하나같이 비난받아 마땅한 것들이었다. K는 이 모든 불편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는 잠시 외딴섬이 되고자 했다. SNS는 삭제했고, 외부 활동은 하지 않았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봤고 간간히 음악을 들으면서 창작 욕구가 쏟아져 나올 때면 글을 쓰거나 음악을 만들었다.  


K는 후에 이 시간을 변태의 시간이라고 기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보다 남을 먼저 생각했고, 부족한 능력은 희생과 양보로 얻은 동료를 통해 채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언제나 대의를 쫓았고, 의견 충돌이 생기면 '숲을 본다'라는 생각으로 조율하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 수록 그는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니라 숲이 되어 가고 있었고, 그것은 개성을 잃어가는 것과 같았다. 모든 것을 얻을 수 없었지만, 그는 하나를 택함으로써 희생하는 소중한 삶의 가치를 바라보는 것을 가슴 아파했다.


그러던 중에 자신에게 이러한 실패가 찾아온 것은 변태과정에 들어선 것이라고 K 믿었다.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가치, 지향점, 삶의 목적과 목표 등은 수정되어야 했다.  변태과정은 앞선 그의 삶에서 긍정의 가치라고 생각했던 것을 깨고 나오는 수련과도 같았다. 또는, 지금껏 그의 신념의 크기보다 미흡한 노력 또는 진정성의 부족 등을 재평가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과정을 온전히 겪는 것은 지금 자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있는 . 그가   있는 일은 무한대였으나 추락한 자존감은  한계치를 잊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 변태과정에 들어섰으나,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에서 얼마큼의 에너지가 필요한지, 그리고 그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지는 알았다. 하지만, K는 확신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단순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완벽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무엇 하나 걸치지 않은 적나라한 상태에 이를 때에 달성된다'는 생텍쥐페리의 문장을 K는 다시 되뇌었다. 복잡한 것은 자신의 길이 될 수가 없다고 믿었고, 그러하기 때문에 지금의 이 무지에서 비롯된 불안은 어느 순간 아주 단순한 계기로 말미암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단순하게 처음으로 돌아와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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