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 몰아치던 파도가 날카롭던 겨울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모든 것은 나의 잘못이다. 변명하지 말고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얼마큼의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상처가 아물지는 알 수 없었으나 떨어지는 낙엽이 발에 밟혀 소리 좋게 바스락 부서질 때가 되자 나는 성숙이란 단어가 지금의 내게 가장 필요하고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알 수 없는 것에 어떤 확신을 가졌던 시기를 지나, 모르는 것에 초연 해지는 마음이 차가워진 바람과 함께 겨울이 다가오는 것만큼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나는 그것이 성숙이라는 것을 설명하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놓치기 싫은 것이 물질적이고 유형적인 것이 아니라 이 마음 이 생각 이 감정이라고, 소중한 것은 이 따위 사소한 것들이라고 확신이 들어 일기를 적어보기로 했다.
나의 비루한 일상은 적히는 글 따라 새롭게 변하는 것 같았다. 그것을 통해 나 스스로를 치유하고 또, 때로는 아주 가끔 근사하게 변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미소가 얼굴에 베였다. 그 마음으로 ‘꾸준한 것이 답이다’라는 존버 정신을 가지고 반년을 썼다. 휴대폰 메모장에 날짜별로 나란히 정렬되어 몇 줄 정도 내용이 드러난 일기들은 어쩐지 아직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숨어 있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이 읽고 보고 쓰는 것이라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에 이왕 이렇게 뚝 떨어진 고립된 섬처럼 되었다면, 예술가의 숙명인 고독을 즐겨볼 요량으로 영화와 책에 빠져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후기를 적기 시작했고 거창하고 복잡한 이론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의 힘을 깨닫게 되었다. 쓰인 글들이 몹시 마음에 안 들어도 그냥 쓰고 공개했다. 공개하기 전에 몇 번이나 위아래로 훑어보았던 글들은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라간 이후에는 도저히 읽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가끔 작가와 출판사로부터 책을 읽어달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후기를 적지 않아도 된다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모두가 훌륭한 작품들이었고 세상은 이토록 넓고 좋은 글과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왜 아직도 몹쓸 녀석처럼 웅크리고 있을까 자괴감이 들었다. 정성껏 보내온 책들은 운명처럼 다가왔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운명이라는 것은 외부의 어떤 힘을 해석하는 행위가 아니라 잠재된 의식을 깨우는 과정과 닮았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사건과 사물은 머리와 가슴마다 빽빽이 자리 잡고 있던 우울과 분노를 치우고 그 한켠에 이상한 에너지를 심었다. 그래서 또 그것 덕분에 헛된 희망이자 무의미한 용기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적는다.
그래도 기분은 상쾌해지니 충분한 거 아닌가.
©️keyp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