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eynote

코로나 19와 나의 삶

by 랩기표 labkypy

코로나 19와
나의 삶







특별할 것 없는 날들은 붕괴 직전의 고요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읽고 있는 책의 활자는 금방 흐려지면서 곧 시야에서 사라졌고 그 위로 잡생각이 쏟아졌다. 온갖 것들이 온몸을 타고 흘렀지만 잘 읽지 못하는 나는 그것들을 어디에도 잘 담아내 쓰지 못했다.

지본주의가 낳은 폐단 중 하나는 이익이라는 개념이다. 이익창출을 위해서 벌어지는 행위는 폭력적이다. 폭력은 필수적으로 파괴를 낳고 피해자를 발생시킨다. 그동안 우리는 다수의 폭력이 만들어낸 소수의 희생에 둔감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 폭력들이 단단히 돌돌돌 뭉쳐 자연을 거스르기 시작하더니 곧 거대한 폭탄이 되어 터지자 우리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고 속수무책인 상황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있다.

생산과 소비라는 자본주의의 기본 균형이 무너지면서 그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 노동 없는 생산과 비용 없는 소비가 발생하고 있다. 더불어 여러 경로로 쏟아지는 돈, 이 상상력의 산물은 우리의 미래가 이익창출이라는 것에만 매달려있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또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묻고 있다. 이 거대담론에 담담히 나서고 싶지만 일상을 지켜야 하는 봉급자의 형편은 그리 녹록지 않아 조금은 서글프다.

‘돈을 일하게 하라’ 같은 슬로건은 돈이 노동력, 인간 본연의 가치와 더욱 멀어지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개미들의 주식시장 러시는 갈 곳 잃은 영혼들이 모여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발버둥처럼 보인다. 몇 억 단위의 부를 축적하는 것이 당연시된 사회에서 ‘일을 열심히 한다’는 의미는 ‘교과서만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간다’는 말처럼 헛되다. 시장과 자본에 대해 제대로 배운 바 없는 우리는 이제야 비싼 과외를 통해 서서히 ‘터득’하고 있다. 어쩐지 얍삽하고 이상해 보이지만 차원이 다른 결과는 모든 것을 정당화시켰다. 피케티가 자본을 위한, 자본에 의한, 자본의 증식을 우려한 지도 벌써 10년 흘러간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자본증식 시장은 더욱 팽창하며 인간은 스스로 수단화가 되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성장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합류하여 몸집을 불려 위협하며 안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성찰이 없는 도전 끝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

내일은 회사 출근을 하지 않는다. 코로나 확진자가 사내 경로로 발생되었기 때문이다. 여느 때처럼 쉬는 날이라고 기쁘지 않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병사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처럼 운에 기댈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다행히 참호라도 하나 얻은 게 있어 몸을 건사하고는 있지만, 이보다 못한 환경에 노출된 사람의 공포는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그것이 곧 나와 주변의 문제로 번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현실에 발 딛고 일상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된다. 모두가 그럴 것이다. 위로는 상대적이다. 모두가 절대적인 불리함에 빠진 지금 우리는 위로가 아니라 대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논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쓸데없어 보이는 것들에, 그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소란을 떤다. 안타깝다. 나는 그 틈바구니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몸을 웅크리고 아들을 안고 일용할 양식을 걱정한다. 모두 무사하고 건강합시다.



©️keyp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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