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정 <밸런스 게임>
아이는 푸른 잎을 펄럭이는 가로수보다 높은 곳을 보고 있었다. 고개를 꺾고 더 높이. 윤은 아이의 시선을 쫓았다. 증권사 빌딩 꼭대기에 송전탑을 발견하고 윤은 반가웠다. 하지만 이내 윤은 아이가 보는 게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작고 녹슨 송전탑. 수신이 끊긴 지 오래인. 그건 마치 윤의 인생 같았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아이가 볼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늘을 보는 거겠지. 꿈꾸듯 뭔가 나른하고 게으른 꿈을 꾸던 때가 윤에게도 있었던 것 같았다. 이후 뭔가를 꿈꾸지만 잘 안될 가망성이 더 많은 나이가 기다리고 있겠지. 저 아이 앞에도. 윤은 안쓰러운 마음이 자신을 향한 것인지 아이를 향한 것인지 몰라 잠시 당황스러웠다. 그런 것들과는 아무 상관없이 아이는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아 태연하게 핸드폰을 보며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오늘도 예쁘고 내일도 예쁠 것이었다. 윤은 누가 더 안쓰러운지 확실해졌다고 생각했다.
— 이소정 <밸런스 게임> 2021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이후 이어지는 사건은 다소 충격적입니다. 이혼녀이자 홀로 아이를 키우는 주인공은 초등학생 아들 담임선생님의 호출로 학교로 가는 중입니다. 학교 교장을 통해 아들이 임신한 개를 토끼우리에 집어넣어 토끼가 죽은 것을 알게 되고(물론 의도적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등장하는 여학생은 주인공 아들의 담임선생님과 성관계를 맺어 임신한 상태입니다. 주인공은 길거리에서 그들이 울면서 서로에게 응원을 건네며 키스를 하는 장면을 빵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관찰합니다. 그리고 너무 황당한 것이 선생과 여학생, 그 둘이 전봇대 옆에 퍼질러 앉아 울며 소리치다가 갑자기 밸런스 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여친 집에 다른 남자 속옷, 다른 남자 집에 여친 속옷
토마토 맛 토, 토 맛 토마토...그리고
뽀뽀하기 뽀뽀받기
선택하기 어려운 두 질문을 연달아 내는 게임인데 이 장면은 정말 아리송합니다. 홀로 아이를 키우며 ‘검은 물’에 잠긴 듯한 일상을 전개해가는 소설 속에 이 장면이 왜 담긴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인간의 표면은 마트 직원, 이혼녀, 교장, 선생, 학생 등등의 모습으로 노출되지만 그 아래 보이지 않는 슬픔과 고통은 보이는 것 때문에 더욱 처절하고 우스워보이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무엇이 더 최악인지 또 무엇이 더 최선인지 선택하기 힘든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각자의 몫이지만 그 둘 사이 ‘균형’을 잡느라 진을 빼는 모습은 매 한 가지인 것 같습니다.
https://www.donga.com/docs/sinchoon/2021/02_1.html
©️keyp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