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 <코끼리>
봐라. 세연아. 노름이 와 무서븐지 아나? 가산탕진하고 폐인 되고... 옛날에는 내 그런 기 젤로 무섭다 여깃는기라. 근데 지금 돌아보이 그기 아이더라꼬. 노름이 진짜 무서븐 이유는
사람을
생각 없이 평생을 살게 맨드는... 바로 그 점에 있는기라.
이 안에는 딴 기 없다꼬.
높고 낮고
따고 잃고
이기고 지는 기 전부 아이가.
돈 땄으믄 그만이고 내가 이기믄 그만인데
근데 뭐 할라꼬 생각을 해?
얼마를 따고 잃었나 그거 말고는
생각을 할 이유가 없는 기지.
우예 이길꼬, 또 우예 속일꼬
우째가 한 끗, 더 높은 패를 쥐고
판돈을 올리고
노가 나고
그거 말고는 평생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기라.
....(중략)....요새 부동산이라 카나? 여, 저 개발하고 집 짓고 분양하고 그 사업하는 거 보까네 한숨이 절로 나오디라. 말해 뭐하겠노, 인자 앞으로 누가 노름을 할라 하겠노 이 말이다. 노름보다 더 노름판이 저래 열릿는데... 동네가 족보고 평수가 끗발이고... 그러이 같은 패를 수백 장 수천 당 돌리는 판 아이가. 세상에 이런 판이 어딧노 말이다.
- 박민규 <코끼리> -
박민규 작가 님의 웹소설 <코끼리>를 일년 넘게 따라가며 읽고 있습니다. 작품은 너무나 훌륭하며 댓글로 좋아하는 작가와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재미도 있습니다.
윗문장은 288화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하우스에서 사기 도박을 설계하는 ‘밀양 아재’가 주인공 세연이에게 하는 말입니다.
무언가에 집착하면 ‘아무 생각 없이 살게 된다’라는 말이 제게 다양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 삶이 오로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기고 지는 것에만 모두가 몰두하는 곳에서는 인간이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누군가 짜 둔 노름판에서
진짜 좋은 패를 들었다고 착각하며
나 스스로 판돈을 올려가는 중은 아닌지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