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인간은 이미 생각하는 인간이 아니라

안희곤 <침묵의 재발견>

by 랩기표 labkypy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 독일작가 막스 피카르트는 <침묵의 세계>에서 이렇게 썼다. “예전에는 침묵이 모든 사물을 뒤덮고 있었고, 그래서 인간은 한 대상에 다가가기 이전에 먼저 그 침묵의 막을 뚫고 나가야 했다. 사상과 사물은 그것들을 둘러싼 침묵에 의해서 보호되었고, 그리하여 인간은 그것들의 급박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침묵이 사라진 오늘날 인간은 오히려 더 이상 능동적으로 사상과 사물을 향해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것들이 인간에게 달려들어 인간 주위에서 소용돌이친다. 인간은 이미 생각하는 인간이 아니라 생각되는 대상이 된 것이다.” 침묵은 의외로 수동적인 것이 아니었다. 생각과 사물이 달려들어 우리를 점거하지 못하도록 막는 사이, 천천히 능동적인 시도를 꾀할 수 있는 바탕이었다. 침묵을 잃으면서 우리는 오히려 사물이 되었다.


- 안희곤 <침묵의 재발견> (링크)






여기서 침묵은 암묵적 동의라는 일반화된 명제와 다릅니다. 저는 목소리를 높여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강하게 주장을 내미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서 어쩌면 삶을 회피한 채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순간 머릿속에 나의 이 치부는 새로운 명분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나는 내 삶을 살고 있다.


오히려 침묵은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주변에 사건 사고가 많습니다. 정보 또한 넘쳐납니다. 매일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스스로 그 안으로 들어가 어느새 헤어 나오지 못하고 구속되어 있습니다. 반복되는 이 현상들은 매 번 다른 가면을 쓰고 나타나지만 그것 모두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생각하는 시간을 빼앗아 그것들이 원하는 어느 지점을 향해 달려가게 하거나 특정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것들에 맞서 싸우는 방법 중 하나로 침묵이라는 칼과 방패를 들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곧 내가 타인 또는 사물로 인해 휘발되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승리를 위한 전쟁과 삶을 지키는 전쟁은 다릅니다"


사진작가 라미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가 사진을 찍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느 한 참전용사에게 액자를 건네줄 때 이제는 늙어 말도 서툴게 내뱉는 그 노인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묘하게 그 말이 침묵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참전용사께서는 구구절절 미사여구를 덧붙인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스스로 건져 올린 생각으로 아주 단순하지만 명확하게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침묵. 이 고요한 생각의 숲에 오늘도 저는 잠시 쉬어가려 합니다.


라미 작가 <참전용사 프로젝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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