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호모 데우스 - 유발 하라리
욕구, 욕망이란 단어는 왠지 마케팅 용어처럼 보인다. 사실 마케팅이란 것이 가슴에 허상을 심어 주는 것이고 그것으로 다수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행위이다. 얼핏 보면 혁명이다. 사상은 행동을 변화시킬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시장 자본주의가 양성한 다른 의미의 수많은 혁명군들과 함께 마주하며 살아간다. 욕구와 욕망도 만들어지는 이런 세태에 우리는 올바른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내가 내린 결정의 합이다.
올바른 선택이란 원하는 결과값을 얻는 것을 가리킨다. 인과관계와 확률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결정'한다. 지능적 활동이다. 따라서 지능이 높다는 것은 정보와 지식이 많다는 것이고 이것을 응용하여 확률과 인과관계를 잘 풀어내어서 의지화 시키고 원하는 결과를 좀 더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능적 동물, 인간은 더 많은 정보와 데이터를 얻기 위해 관계망을 만들었고 빠르고 정확한 처리를 위해 컴퓨터 같은 연산 기계를 발명했다. 이제는 몰랐던 자아를 발견하는데 까지 왔다.
여기서 책은 묻는다. 인간의 선택은 알고리즘일 뿐이며 그것이 외부 존재에 의존하게 된다면 인간의 지적 활동이 필요한가. 작가는 필요 없다고 결론낸다. 더 이상 우리는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주체가 아닌 추종자가 될 뿐이다. 꼬리가 사라지고 후각이 퇴화 하듯이 지능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인간의 모든 활동을 결정짓는 뇌의 알고리즘은 외부 기기 혹은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관에 의지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정보의 자유화 속에서 가축화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닭과 돼지에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지능적 존재에게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구속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활동이 정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만들어 내기 위한 실험실의 쥐처럼 조정당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도 인스타그램과 페북을 뒤지면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정보 들은 여러 방식으로 분석되고 그 결과에 따라 다양한 경로로 우리가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마케팅을 당한다. 이것들은 또 다시 네트워킹 되고 스마트폰에서 사물 인터넷으로 이어지며 우리의 욕망과 일상은 조정당한다.
사실 돌이켜 보면 대부분의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대한 근거는 쉽게 설명하기 힘들다. 어딘가 써져있고 누군가 정설처럼 이야기했고 이것이 사회 구성원의 당연한 의무라는 식으로 설명된다. 그에 따라가는 것이 진정 우리가 욕망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존재의 목적은 무엇일까.
종교에서 인본주의로 이제는 거대한 데이터망에 살게 될 미래가 온다. 조정당하는 욕망과 의지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의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는 이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두 이념의 서로 다른 결과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사상을 택하여 행동을 변화시키고 어떠한 미래를 만들어 갈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충분한 고민과 담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