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eynote

주경야독

일하고 쓰는 자

by 랩기표 labkypy

주경야독





내 인식 기저에 단단히 박혀 있는 생각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어떻게든 가난을 피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로 이 비루한 생각을 뛰어 넘어설 수 있는 대의를 좇는 일을 동시에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콤플렉스나 면죄부 등으로 포장해 꺼내 놓을 수 있겠지만, 나 스스로에게는 그저 운명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 어디서든 ‘운명’이라는 단어를 마주하고 곱씹는 경우가 생길 때마다 이 모든 것들을 새삼 재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곧 추사 김정희의 글 ‘세간량 건사경독(世間兩 件事耕讀)’에서 ‘경독’으로 압축되었다. 그 시기가 언제인지 정확히 떠올릴 수는 없지만 내 생활은 철저하게 이 경(耕)과 독(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이가 들 수록 이 추상은 구체적인 현실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들었다. 구멍가게에서 어느 과자를 먹어야 할까 정도의 고민과 수고로 직장인이 되었고, 나는 오로지 내가 세운 그 구체적이고 찬란한 목표인 대중문화예술 기획사 대표가 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았고, 자기개발서에나 나올 법한 그저 그런 노력과 인내와 좋은 시기의 조합을 기다리는 선원이 된 것 같았다. 힘든 줄을 몰랐기에 청춘이었고, 청춘은 또 힘들게 보내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경독은 현실과 이상을 동시에 꿈꾸는 일로써 나를 운명처럼 이끌어 왔다. 그 노력의 산실이 성공이라는 공식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고난과 역경을 마주하고 있는 요즘이다. 나의 꿈과 열정은 그 속에서 모두 타버린 것 같았지만 어느새 불이 꺼지고 비가 내린 후 봄이 오자 그 흉터는 아물고 새로운 싹이 트기 시작했다. 이 운명이라는 단어가 다시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 달 동안 휴직을 한다. 밭을 갈지 않는 생활이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나름의 이 운명을 피하는, 이 짐을 내려놓는 행위를 ‘사가독서’라는 밋밋한 표현으로 대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안에 나는 하루의 일과를 계획하고 작은 목표를 정했다.

잠시, 아주 자유롭게 나를 놓아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삶이다. 코로나 19와 넉넉지 못한 형편에 내 생활 전반에 큰 변화를 꾀할 수는 없겠지만, 나름대로 앞으로의 삶이 새로이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은 있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그 자체에 충실하며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끝에 무엇이 올 지 알 수는 없으나 중요한 건 이 여정의 길목에 이 글을 읽어 주시는 여러분들이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응원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감사합니다.




Albert Ca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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