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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Apr 23. 2021

설레는 꿈 하나 사세요

[책] 달러구트 꿈 백화점

생생했던 꿈이 눈을 뜨는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아직 눈꺼풀에서 완전히 떨어진 것 같지 않아 혹시나 다시 볼 수 있을까 눈을 감아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무슨 꿈이었을까. 돼지가 숫자라도 물고 나왔다면 로또라도 살 텐데라는 생각을 하다가 출근 준비에 꿈같은 생각은 집어던진다. 밀려 있는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 출근길 내내 이것들이 머릿속에서 자리싸움을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자리에 앉자 말자 밀린 일을 허겁지겁 해치우기 시작한다.


그러다 허기가 지듯, 꿈이 밀려왔다. 기지개를 펴고 잠시 눈을 감았더니 어젯밤 꿈, 실체가 불분명했던 그 꿈이 그제야 기억이 났다. 괜히 기분이 좋아 한참동안 눈을 감았다. 눈꺼풀 뒤로 눈을 이리저리 바삐 움직인다. 기분 좋은 시간이 조금 더 이어졌다.


하루 7시간. 인생 지분의 33%를 차지하고 있는 잠든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꿈꾸는 시간이다. 꿈을 꾼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작가는 꿈은 삶을 살아가는데 힘을 북돋워 주는 것이라며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꿈꾸는 시간이 기다려졌으면 좋겠다"는 이 짧은 작가의 말에 긴긴 질문이 이어졌다.  


꿈을 꾸지 않는 시대

  

꿈꾸는 법을 잊었다. 자는 것은 죽은 시간이라고 했다. '잠은 죽고 나서 충분히 자라'는 말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에 훌륭한 슬로건이었다. 우리는 잠을 줄이고 쪽잠을 자거나 밤샘을 하며 어두운 밤과 지루한 사투를 벌였다. 그 결과 우리는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낮이고 밤이고 꿈을 꾸는 것은 실용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실용적이지 않은 인간은 쓸모가 없었다. 쓰임에 따라 삶의 가치가 메겨지는 우리는 그렇게 애써 꿈을 꾸려하지 않았고, 때로는 일부러 피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꿈을 꾼다. 꿈을 꾼다는 것은 배부른 소리다. 슈퍼맨이 되고 싶다는 아이들의 꿈부터 소설가나 훌륭한 기업인이 되겠다는 어른들의 꿈들까지 초라한 자신의 모습과 높은 현실의 벽 앞에서 뚱딴지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꿈을 꾼다. 이런 몽상가들은 그것이 단순히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진지하고 구체적인 현실이다. 그 추상을 구체화하기 위한 작업을 꿈같은 소리 대신에 행동으로 옮긴다는 점이 남들과 다를 뿐이다.


그들에게 한 밤의 꿈과 한낮의 꿈은 서로 닮았고,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지금 현실이 꿈인지, 꿈이 현실인지 과연 누가 어떻게 자신 있게 확답할 수 있을까. 어쨌든 누군가는 자신이 꿈에서 그리던 삶을 꾸려간다.




꿈 사세요, 꿈


 백화점을 운영하는 달러구트는 꿈이 현실더욱 의미 있도록 만들어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잠이 들고  백화점에 방문하는 손님들 각자에게 필요한 꿈을 판다. 사람들은 구입한 꿈을 꾸고 현실로 돌아와  기억나지 않는   덕분에 살아갈 이유를 찾게 된다. 환상적인 단꿈부터 우중충한 악몽까지  각각의 꿈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다. 미래의 일상을 짧게 보여주는 예지몽은 로또 당첨을 꿈꾸는 자에게는 단순히 욕구를 실현하려는 도구일 뿐이지만, 불안한 미래를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삶의 목적이 된다. 그렇게 달라구트는 사람들마다  필요한 꿈을 팔아 그들에게 살아갈 이유를 찾아주고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있게 도와주고 싶어 했다.


이런 달러구트가 운영하는 꿈 백화점에 열정이 넘치는 신입사원 페니가 등장한다. 5층으로 구성된 꿈 백화점 이곳저곳을 다니며 다양한 사건들이 이어진다. 등장하는 꿈 제작자들과 각 층마다 열심히 꿈을 파는 매니저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잔잔한 미소가 퍼진다. 쉽게 읽히는 글은 내용만큼이나 친근해 침대 곁에 두고 아이에게 하나씩 읽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와 동화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어쩐지 상쾌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것 같다.


꿈꾸는 현실을 만들다


꿈꾸는 일이 무서워지는 나이가 되었다. 드라마 <나빌레라>에서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70대 할아버지가 어릴 적 꿈인 발레리노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는 발레를 하는 것이 무섭다고 했다. 혹시나 기억을 잃고 쓰러지지 않을까, 춤을 추다가 허리가 삐끗해서 몸이 상하지는 않을까 무섭다고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매번 몸에 꽉끼는 발레 옷을 입고 연습실에 들어서는 이유는 바로 무대 위에서 한 번 날아보고 싶다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꿈같은 현실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건 꿈을 좇는 모습이 나이만큼 커져버린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도전하는 누군가에게 우물쭈물하는 그대에게 가장 필요한 그 용기이기에 그 모습에  울고 웃는다. 그에게 꿈과 현실, 그 경계는 한낱 농담 같은 것일 뿐이고, 실용이라는 말은 무용이 대용이라는 말에 한없이 작아질 뿐이다.


어쩌면 작가가 이 명랑한 이야기로 말하고자 하는 것, "꿈꾸는 시간이 기다려진 다"는 것의 의미가 이처럼 주어진 현실이 다분히 비루하고 초라할 지라도 우리는 그 현실 위로 날아오를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아닐까. 이것을 잊지 말자는 용기와 위로를 건네려고 한 것이 아닐까.


오늘 밤, 나는 어떤 꿈을 꿀까. 그리고 나는 내일 다시, 어떤 삶을 꿈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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