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eynote

버스 안에서

by 랩기표 labkypy

버스



​​

무의식적으로 앉았다. ​


앉은 자리에는 어떠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


문득, 익숙해진 것만큼 더 쉬워 보이는 것은 없지만

우리에게 익숙해졌다고 쉽게 상대할 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밥을 먹는 것도 걸음을 걷는 것도 술을 마시는 것도

어려웠다가 쉬웠다가 다시 어려워진다. ​


지금 내가 무엇이 익숙하고 쉬워졌다는 것은

다시 어려워질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


그래서 그런지 갑자기 버스 의자가 불편해졌다.​


불편해진 의자에 앉아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들었다.

흘러 들어오는 악기 소리들이 흥을 잃고

먼발치에서 그저 둥둥둥 울리는 것처럼 성가셨다.

그래서 다시 경제 공부, 돈 공부에 관련된 영상을 틀었다. ​


어려웠다. 그럼, 이제 쉬워질 날이 다가올 것인가

절약형 성실한 웃음이 돋았다.​


법과는 무관한 삶이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법무일을 맡고 여러 송사에 얽히면서 익숙해졌다. ​


익숙해졌다는 생각에 함부로 익숙해졌다고 흠칫 놀라며, 셔틀 버스에 앉아 있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읽고 자판을 튕기면서, 그때부터 쉬워졌다는 착각이 시작됐구나 깨달았다. ​


그래서 다시 어려워지면 그때서야

쉬운 게 아니구나 깨닫게 될 것인가.​


그래도 나는 굳이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쉽게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patago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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