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입니다
우연은 이유가 없다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흐릿하게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향한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눈을 떴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잠이 든 것이었다.
"저기요..."
"아. 네..."
나의 머리가 그녀의 어깨에 닿아 있었다. 민망했다. 서둘러 고개를 뒤로 제쳤다.
"죄송합니다..."
"계속 머리로 툭툭 치셔서 어쩔 수 없이 깨웠어요."
"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각자의 시선은 창밖과 스마트폰으로 갈라졌다. 스마트폰에는 아영으로부터 메시지가 와있었다. 나는 열어보지 않은 채 다시 눈을 감았다.
버스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처음 보는 여자의 어깨에 머리를 떨구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민망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암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삶은 우연의 집합이다. 내게 있어 인생에서 기억에 남을만한 대부분의 일들은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운이 좋았습니다."와 같은 인터뷰를 볼 때마다 어쩐지 나는 저 문장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학교로 군대로 회사로 거처를 옮기고 적응하며 살아왔다. 그 과정은 결국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어 가는 노력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노력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이 나를 통해 충만해질 때 유쾌해졌다.
그래서 우연히 찾아온 버스 안의 이상한 기운을 붙잡아야 하는 것인지 스스로 묻고 있었다. 첫눈에 반했다거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따위의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이대로 흘러 보내면 어떤 기회를 잃을 것만 같다는 일종의 아쉬움이었다.
붙잡은 우연은 과연 내게 필연이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속으로 수없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나를 확신에 차게 할 수 있는 또 다른 우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버스는 이제 바다를 가로지르는 긴 다리를 건넜다. 그녀는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도 분명 헤어진 남자 친구를 비롯해 여러 생각들이 복잡하게 엉켜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중에 옆자리에 앉은 나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결국 나는 만약 버스에서 내려 그녀와 같은 방향으로 간다면 말을 걸어보겠다고 다짐했다. 피식. 장난기 많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분주하게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지막에 내릴 모양인지 서둘러 일어날 기색이 없었다. 복도 쪽 옆자리에 앉은 사람으로서 마음이 놓였다. 내 옆으로 줄이 사라지자 나도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녀도 덩달아 가방을 어깨에 메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때 아영이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받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다시 음악을 들었다. 꽃무늬 원피스가 내 옆을 지나쳤다. 나는 눈으로 그 뒤를 좇았다.
https://youtu.be/o5YgC5Hg7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