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입니다
버스 옆 자리에 눈에 띄게 이쁜 여성이 앉았다.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였다. 원피스를 입은 그녀에게서 좋은 향이 났다. 나는 무심하게 코로 깊게 숨을 끌어당겼다.
곧 그녀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가방에서 아기자기한 케이스를 입은 스마트폰이 나왔다. 그녀는 불을 내뿜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어색한 듯 멀뚱히 쳐다보았다. 곧 통화 버튼을 누르고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왜 전화한 거야”
그녀는 잠시 상대방 말을 기다렸다.
“괜찮다고 했잖아. 왜 계속 전화해. 버스 안이라서 통화 못해. 이제 끊을게”
핸드폰이 그녀의 귀에서 잠시 떨어지자 건너편에서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격양된 목소리가 다급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갔다. 그 사이 버스는 서서히 움직여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나는 옆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대해서 무신경하다는 신호라도 보내듯 책을 펼쳤다. 눈에 들어오는 활자들은 모두 동음이의어 같았다. 그녀는 약 2~3분을 듣고만 있다가 짜증이 더 첨가된 목소리로 말했다.
“화가 났었지만, 내가 왜 화났는지 모르겠는 거야. 근데 조금 있다가 화가 났다는 그 사실이 더 짜증이 나는 거야. 그 짜증에 이유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에 또 화가 났지. 그래서 생각했어. 운명이란 이런 것인가. 오빠가 나한테 한 행동 때문에 화가 난 것 같았는데 아니었어. 그냥 오빠 때문에, 오빠랑 같이 있으니깐 화가 난 것 같아.”
잠시 말이 끊겼다가 이어졌다
“그걸 왜 이해를 못하니. 헤어지자고 하는 거잖아. 그만해. 짜증 나.”
그렇게 통화는 종료되었다.
나의 눈은 여전히 책에 고정되어 있었다. 활자도 여전히 불확실했고 나는 상대편 남자의 안부보다 이제 막 이별을 마친 여자의 피부가 이렇게 좋아도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거울을 쳐다보는 그녀가 조금 무섭기도 했다.
또한 실체가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익숙한 것을 끊어내 버리는 결단이 신기했다. 냉철한 판단으로 원인을 찾아내고 그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부러웠다.
다시 핸드폰은 억울한 듯 울렸다. 그녀는 받지 않았다. 어쩐지 그녀가 나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아 자리가 불편해졌다. 그녀는 곧 무음으로 변경하더니 루이뷔통 가방 깊숙이 스마트폰을 집어넣었고 팔짱을 끼고는 창 밖으로 몸을 비스듬히 돌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나는 곁눈질로 그녀의 원피스에 매달린 꽃무늬를 볼 수 있었다. 색감이 맘에 들었다. 다시 책에 집중하려 했지만 무리였다. 나는 책을 덮고 음악을 틀었다.
Gregory Poter의 Liquid Spirit이 흘러나왔다.
https://youtu.be/07rb7QQYk7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