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
부서져 못쓰게 된 과일
16세의 여자를 가리키는 단어
64세의 남자를 가리키는 단어
작가 구병모를 알게 된 것은 김동인 단편집에서 들어가는 글 ‘바랜 붉은 빛’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김동인 작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글이 꽤 흥미로워 필히 그의 작품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읽게 된 그의 작품 ‘파과’는 예상처럼 신선하고 재밌었다. 그리고 인상과 달리 작가가 여성이라는 것과 디테일하고 흥미진진한 결투 묘사를 읽으며 얼마나 내 안에서 편견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
60대 여성 킬러가 등장한다. 그녀는 예전 같지는 않지만, 사람을 처리하는 일, 그들이 ‘방역’이라고 부르는 작업을 어렵지 않게 완수한다.
어릴 적 그녀가 방역했던 자의 아이가 자라, 그녀와 같은 방역회사에서 일하게 된다.
팀워크가 중요한 일도 아니고, 일 배정은 디지털로 전환된 지 오래였기 때문에 둘은 자주 마주치는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킬러가 된 소년은 그녀를 찾아 회사며, 현장이며 그녀의 주변을 맴돈다.
킬러의 손에 부모를 잃은 아이는 자신의 손으로 그 킬러를 죽이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그것은 사랑했던 부모의 원한을 갚겠다는 복수라기보다는 방향을 잃은 자신의 삶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가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은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머리로 가슴으로 그것을 들여다보며 좀 더 가까이 다가서려 노력하지만, 매번 실패한다.
알 수 없는 것들로부터 실패하는 삶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수고만큼의 공허함으로 돌아온다.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 의미를 찾아야 된다. 일어설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해야 된다.
그러다, “원인 불명의 이변이 일상을 압도하고 대상 모를 두려움이 구체적인 질감을 갖추”기 시작 하면 회의감과 자괴감으로 무너질 때도 있다.
60대 여성 킬러 ‘조각’은 감히 이해하기 힘든 것들에 공을 들이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상대를 해치울 따름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제거해 밀물과 썰물처럼 왔다가는 희로애락에 무뎌졌다.
“책임질 것들을 만들지 말자”라는 삶의 교훈으로 그녀는 끈질기게 삶을 이어왔지만, 자신은 왜 그토록 삶에 집착하는지, 사실은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는가 매번 자문하지만, 다시 삶을 꾸역꾸역 살아갔다.
킬러가 된 소년과 노인이 된 킬러는 결국 목숨을 두고 싸운다.
싸움의 묘사는 세밀하고 노련하게 써져 있어 읽는 데 속도감이 붙는다.
사투 끝에 살아남은 조각은 킬러를 관둔 건지 모르겠으나, 얼마 남지 않은 삶에 평범한 일상을 채울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하나만 남은 손에 네일아트를 하며 시험한다.
평범한 일상.
그것은 쓸 데 없어 보이는 작은 것들에 감정을 담아내는 작업이었다. 그녀는 병든 자신을 치유하고 온전히 감싸기 위해서 새로운 방역을 하기 시작했다.
***
작가는 제목 ‘파과’를 부서져 못쓰게 된 과일의 의미로 썼지만, 소설 끝에 또 다른 의미가 담긴 것 같아서 한자를 뺐다고 했다. 단문이 아닌 장문을 쓴 것도 으레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공식을 깨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설을 읽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은 스스로 그 뜻을 헤아리고 자신의 삶에 대입함에 따르는 즐거움일 것이다.
https://youtu.be/_BJshqLm8c4
©️sce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