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 맞은편에 있는 어린이집 담벼락에 기대서 담배를 피우는 수험생은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수능 한파라지만 그리 춥지 않은 오늘 날씨였다. 그는 ‘수능날’의 반사적으로 꺼냈을지도 모를 두터운 파카를 입고 있었다. 재수생일까. 머리 스타일이나 몸동작을 보니, 규율로 짜 맞춘 딱딱한 고등학생 틀에서 벗어나 있어 보였다. 어딘지 여유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예측이 잘 들어맞아야 하는 날인데, 파카보다는 더 낫기를 바란다.
시험 시작 시간까지 한 시간 넘게 남았지만 차량 행렬은 길었다. 덕분에 늦게 도착한 택시 안에서 나의 수능날도 지금으로부터 근 20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몸서리 쳐진다. 그때 지금 나의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었는데, 참으로 신기하다.
그날에 나는 처음 간 낯선 학교에 아무도 없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심지어 응원 나온 선생님들과 후배들도 만나지 못해 다시 3층 계단을 걸어 내려가 “가방은 어디 갔냐”라고 묻는 선생님 질문에 “제가 조금 일찍…”이라는 뒷말이 흐릿한 답을 했었다. 나의 수험장이 부산이니, 울산 사는 어머니가 부산 사는 이모가 준비했다는 초콜릿을 받아서 가야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더불어 혹시 차가 밀릴지도 모르니 조금만 더 일찍 나가자고 했는데, 정작 도로 위는 너무나 차분하고 한적했다.
그래서 후배가 챙겨준 커피 한 잔과 초콜릿을 받아서 교실에 들어와 책을 펼쳤다. 검정, 파랑, 빨강 색으로 그어진 참고서와 노트를 보며 ‘빨간색만 보면 되겠지’라는 조급한 마음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눈동자에 드러났다.
시험이 시작되고 일교시 언어가 끝나니 1/3 정도가 욕을 입에 물고 가방을 챙겨서 나갔다. 2교시 수학이 끝나니 다시 1/3이 나갔다. 나는 이미 영혼이 어디론가 나가 있어 육체를 저 밖으로 빼 낼 생각을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4교시 영어가 시작되고, 듣기가 끝난 후 어느새 내가 졸고 있다는 것을 감독관이 어깨를 툭 쳐서 알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왠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다.
담배 피우던 하얀 파카의 수험생은 재수생일까. 재수생이라면 지난 수능날에 몇 교시쯤 박차고 나갔을까. 아니면 최선을 다했지만 다시 한번 더 하면 좋은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의지일까.
어쨌든 건투를 빈다. 용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