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eynote

의미를 부여하는 일

by 랩기표 labkypy

뜻하지 않았던 불행한 일들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은 일종의 지루한 형벌에 가깝다. 자기합리화를 비롯해 일종의 위안으로 끝나는 이 일련의 과정은 제대로 된 반성을 동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재발 위험도 크다. 그래서 켜켜이 쌓인 해결하지 못한 문제 더미들 앞에서 더더더 부풀어가는 상처가 불시에 터지는 바람에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상실하기도 한다. 그 안에서 나는 이토록 헛된 욕망과 희망을 바라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 새벽. 꿈을 꿨다. 주인공은 나였고, 이외 등장인물에 대한 기억은 없다. 어떤 일을 처리하느라 바빴다. 사위는 검었고, 앞은 보이지 않았다. 불안은 뻗은 손 끝을 타고 흘러 겨우 잡힌 난간 같은 것에 진동으로 전해졌다. 떨리는 난간은 나를 지탱해주는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라 나는 그것이 그동안 내가 의지했던 그 어떤 무엇보다도 강하기를 바랐다. 나는 그 단단한 신념으로 겨우 검은 입속을 헤쳐 나와 세상 밖으로 뱉어졌다. 밖으로 나와 이렇게 맑고 밝은 하늘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고 다시 아늑한 기분에 빠졌다. 따스하고 포근한 배경이 나를 다시 감쌌고, 떨리던 손은 부드러운 타인의 손위에 포개져 손가락 하나하나를 더듬고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 얼굴을 알기도 전에 눈을 떴고, 이른 아침을 맞이한 어둠은 빛에 밀려 겨우 침대에 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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