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eynote

특별하지 않아 특별한

by 랩기표 labkypy

특별한 무언가를 생각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만이 특별했을 뿐, 새로운 것은 없었어요. 그냥 평범한 날이었어요. 평소처럼 음식을 해 먹고 제시간에 잠들고 일어났습니다. 괜찮은 영화를 두 편이나 본 것이 조금 특별하네요. 그리고 오랜만에 지상이가 근 일 년 동안 가지 않았던 트램폴린 파크에 가자고 한 것이 특별하다면 특별합니다.


해가 바뀌면서 우리는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한다고 난리법석입니다. 하지만 그 시작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그것의 끝이 있는가. 끝맺지 못하면 그 계획과 다짐은 어찌 되는 것인가. 폐기된 소망은 무엇으로 되살릴 수 있는가.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불안한 것인가와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삶이 일 년 단위로 분절되어야만 할 것 같은, 놀랍지만 보편적인 그런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문득 끝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에게 있어 끝났다고 할 만한 것들은 무엇일까 되돌아봤습니다. 다시 나는 애매해졌습니다.


근데, 또 한 편으로는 우리 삶이 유한하지만, 유한한 삶 속에 어떤 성취를 위해서 무한대의 노력을 한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휘발된 연료를 다시 공급하기 위해 기념일을 가져와 계속 삶이 어떠한 의미가 있다고 상기시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평범한 하루가 어쩌면 새롭게 시작하는 1이라는 숫자와 맞물려서 특이점을 넘긴 화학 법칙처럼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생각하기 나름이니깐요.


그렇습니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이제 이 정도 나이가 드니깐 바뀌는 것이 있습니다. 세계관이 생기는 것이죠. 요즘 세계관이 인기입니다. 세계관은 BU(BTS Unverse)와 빙그레우스처럼 기업들에게 인기입니다. 팬데믹 시대에 공감대 형성을 위해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팔로잉을 하면서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근데, 개인적으로는 어떤 세계관이 생겼다는 것은 끈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계속 남의 눈치를 보던 취향이 이제는 에라 모르겠다. 나는 나대로 살련다하고, 이처럼 손발이 오그라드는 글을 아무렇게나 쓸 수 있는 용기처럼 오래 묵혀서 덜떨어진 신경계의 발화 같은 것입니다.


머릿속에 어떤 글이 적히는 데, 그게 나는 시라고 생각하는데, 시가 아닌 것 같아도 적습니다. 그래도 추운 날씨에 혼자 버티고 서 있는 창문을 찾아가 온기라도 불어넣어 주고 싶어 타닥타닥 자판을 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따뜻한 겨울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일요일의 화가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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