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eynote

버스여행

by 랩기표 labkypy


아들이 처음으로 버스를 탔다. 가벼운 감기 증상이 있어 가까운 약국에서 약을 사서 돌아가는 길에 버스를 타면 어떨까 하는 약간의 장난기가 들었기 때문이다.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들은 갑자기 주변이 다 들리는 목소리로 “아빠 왜 저 아저씨 목에 에이 비 씨 디 글자가 적혀 있어?”라고 물었다. 당황했지만 목소리를 낮춰 아들에게 저것은 타투라고 하는 것이고, 누구나 자신을 꾸밀 권리가 있다고 조곤조곤 말해줬다. 이해는 못했겠지만, 아들은 고맙게도 더 묻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가 쉽더니 곧 “왜 머리는 갈색이야?”라고 물었다. 따뜻했던 봄날의 바람에 어색한 기운이 함께 밀려오는 것 같아 고개를 들었더니 다행히 남자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어 아들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버스가 승하차장으로 머리를 집어넣자 말자 서둘러 차에 올랐다.


아들은 내부가 신기한지 이리저리 둘러봤다. 버스가 출발하자 덜컹거리니 살짝 놀라며 창밖을 바라보고 작은 환호를 질렀다. 버스가 정류장을 출발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들은 두 손 가득 간식을 꼭 잡고 있어 뒷문으로 내려가는 길이 더욱 서툴렀다. 어린 승객은 목적지도 모른 채 아빠 손에 이끌려 짧은 이동을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거제도에 머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쉬는 날 아무 버스에 올라 한 시간 정도 이동했던 적이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낯선 코스는 노동자를 여행자의 기분으로 만들어주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길은 상상 이상이었다. 아름다운 길은 섬이 귀한 손님에게 정성껏 내놓는 진수성찬처럼 아주 풍성하고 포근했다. 날이 맑고 따뜻한 계절이었기에 녹음은 찬란했고, 바다는 햇볕에 타닥타닥 불꽃을 튀기 듯 튀어 올랐다. 그렇게 한 시간 뒤에 어느 바닷가 마을에 도착했다. 나를 두고 떠난 버스는 두어 시간 정도 뒤에나 다시 온다고 하길래 무작정 걸었다. 걷다가 쉬고, 사진도 찍었다. 분명 어떤 글을 긁적였겠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찾지도 않았다.


오늘 아들과 함께 처음으로 버스를 탄 날, 언젠가는 차가 아니라 버스와 기차를 타고 괜히 멀리 돌아 여행하는 기쁨을 가져보리라는 소박한 희망에 들떠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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