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ypyo Jul 28. 2022

풀의 시대

일기


Dear //



우습지만, 아직도 저는 제가 누군지 잘 모릅니다. 저를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은 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음악, 글, 사업 등. 나는 내가 보통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던 것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그것들이 나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문득 나는 이것이 “자유는 고통”이라 것을 체험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정의할 수 없는 상황. 틀을 벗어난 상황은 고통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스스로 나 자신을 누구누구라고 항상 찍어내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


그것은 공동체 생활에서 필수입니다. 역할이 없으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필요없는 존재는 타인에게 어떠한 가치도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시당하거나, 버림받습니다. ​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 됩니다.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벗어 던진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자유 혹은 해방은 타인의 것이 아닌 나의 것으로부터이기 때문에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나 스스로 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인정으로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슬픔입니다. ​


그 자유라는 것이 실상 또 다른 곳으로의 속박이기 때문에 고통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노력이 가치생산을 못할 바에 그만두겠다는 것은 조금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신을 위한 진심을 태워버리는 것이니깐요. 나를 향한 진심이 타인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편견으로 인해 좋아하는 일을 그만두는 것은 나를 버리는 것과 비슷한 아픔이 동반됩니다.

풀은 나약한 존재라고 하지만, 생의 주기가 짧기 때문에 진화된 식물이라고 합니다​. 생의 주기라 짧아지니 종의 역사로 보았을 때, 진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환경변화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환경을 우리에게 맞추다보니 어떤 재앙이 벌어졌습니까. 이 말 이면에는 결국 우리를 환경에 맞추는 것이 지속가능한 삶이라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환경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환경(구조)속에서 잘못된 결과가 나올 확률이 큽니다.

내 주변을 보고, 듣고 싶은 것으로 바꾸는 것.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업은 무엇일까.

부메랑처럼 매 번 돌고 돌아 오는 질문에 대한 답도 역시 똑같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자.

니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자. ​


넓은 세상에 많은 사람들.

그만큼 또 많은 생각들과 많은 행위들.

그 속에서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드는 것에 쫓기며 살기에는 너무나 삶이 소중하고 설레는 것들이 많습니다. ​


이석원 님이 책을 읽다가 밴드 ‘언니네이발관’ 멤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간단해 보이는 문장이 서로 엮어 설렘을 전달하는 일은 아주 보람된 일입니다. 나도 너도 다 같이 그 안에서 헤엄쳐 꼬르륵 수영하는. 기분.


https://youtu.be/lFAB6EHrQzQ

작가의 이전글 사실 그들은 좋은 문제를 찾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