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산
박해일이 연기한 이순신은 너무 좋았다. 그의 온몸에는 피곤이 철썩 달라붙어 있었다. 말 수는 적었으며, 결정은 신중하고 날카로웠다. 다소 불통처럼 보였으나 자신의 말의 무게를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말을 함부로 내뱉지도, 뱉은 말을 주워 담으려 하지도 않았다. 짧고 굵지만 재빠르게 나아가는 그의 의지는 전장 곳곳에서 아군을 움켜쥐며 필사 항전으로 이끌었다.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그가 전사한 노량해전까지 단 한 차례 패배도 없이 적을 섬멸한 기적을 우리는 배워 알고 있다. 나라를 버리려고 했던 무능한 왕의 시샘이 나라를 뒤엎으려 한다며 그에게 죄를 물어 옥고를 치르게 했다. 그동안 원균은 수군을 거의 전멸시킨다. 그래도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응했던 명량해전. 김한민 감독은 그 전쟁을 1부로 하고 시간을 앞으로 되감아 두 번째 이야기로 ‘학익진’의 한산도 대첩을 다룬다.
결국 승리는 Time, Place, Occasion(TPO). 조선과 일본의 두 수장은 치밀한 수 싸움에 들어간다. 정보를 모으고 전술을 파악하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전투를 벌일지 결정한다. 모두가 한 마음 같지 않기에 각 진영이 수하들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하지만, 결국 자신의 무대로 적을 불러낸 이순신이 승리하게 된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모든 계획의 마침표였다.
전작보다 진보한 기술력으로 몰입감을 증가시켰다. 해전은 실전을 방불케 했다. 거북선의 위용은 탄성이 나올 정도이다. 촬영 영상을 보니, 녹색 배경을 뒤로하고 연기하는 배우 모습이 다소 우스울 지경이다. 그러나 그 모습이 뛰어난 기술력으로 보는 이에게 굉장한 압도감을 선사했다. 기술이 역사를 복원해 박진감 있게 그려내는 모습에서 현실과 가상의 구분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이든 가상이든 그 종류가 무엇이든 중요한 건 메시지와 진정성인 것 같다. 나의 상상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연출하는가의 문제.
거제에서 영화 <한산>을 보는 기분은 조금 색달랐다. 국뽕에 이어 지역부심까지 겹쳐 큰 ‘거(巨)’에 구할 ‘제(濟)’라는 지역명에 따라 나도 나 자신을 구제하고 위대한 역사의 한 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잠시 들었다.
“이 전쟁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