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
시. 이창동 감독. 을 쓰고 나니, 어딘가 웅장해지는 기분입니다. 더불어 이 영화의 주인공은 고 윤정희 배우입니다. 저의 시대(00대 이후)에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시’ 한 편입니다. 저는 이외 윤정희 배우가 등장하는 작품을 본 적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님의 부인이라는 것 정도가 윤정희 배우 님에 대한 제가 가진 사전 지식입니다.
윤정희 배우 님은 주인공 미자 역을 맡았습니다. 그녀의 말은 살짝 들떠있고 동작은 나풀거립니다. 그리고 그녀는 시를 쓰고 싶어 합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언젠가부터 아름다움을 좇으며 살았고 어쩌면 시가 자신의 황혼을 더욱 빛나게 해 줄 동반자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녀는 시를 주제로 한 시민강좌에 등록합니다.
여럿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교실에 시인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실제 김용택 시인이 본인 역을 맡았습니다. 그는 시는 찾아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으니 겁먹지 말라고 합니다. 시 같지 않은 말들이 시인 입에서 흘러나오니 그 어색함이 배가 됩니다. 그렇게 간절한 할머니의 시의 여정이 어색한 시인의 발언과 함께 시작됩니다.
미자는 손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혼한 자신의 딸이 맡기고 갔습니다. 할머니 손에서 자란 중학생 남자아이는 지저분하고 생활이 엉망이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어린아이는 모든 것이 귀찮고 불만족스럽습니다. 천상 어린이 같은 그의 모습 뒷면에 동기 여학생을 성추행하여 피해자 스스로 자살까지 하도록 몰고 간 잔혹함이 베여 있습니다. 아이는 죽었고, 엄마는 슬피 울지만, 미자의 손자와 그의 무리는 태연히 게임을 하고 놉니다.
반성 없는 손자를 비롯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자의 곁은 추한 것들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허름한 아파트. 성추행당한 요양보호사. 아이 잃은 엄마에게 가난을 앞세워 합의하자는 부모들. 그리고 기억을 잃어가는 병. 미자는 어두컴컴한 터널 속에서 작은 빛이라고 본 것만 같이 시를 탐닉합니다. 흔들리는 나무와 길 옆에 핀 꽃에서 그녀는 시상을 끄집어냅니다. 망치를 든 목수처럼 시를 쓰고자 하는 그녀의 눈에는 모든 사물이 이전과 다르게 시감으로 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하나 둘 적어가던 노트 속에서 결국 터져 나온 것은 땅 위에 떨어진 자두 같았습니다. 툭 털어져 생을 마감하고 발에 밟혀 찢긴 채 다음을 기약하는 과실의 운명. 다리 위에서 외롭게 홀로 차가운 강바닥으로 떨어진 아이의 운명. 아름다움을 찾겠다고 시작한 시는 결국 가슴이 쩌릿한 문장으로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이창동 감독은 “세상이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루한 삶에서 아름다움은 희망을 찾기 위한 수단일까요 아니면 그 자체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일까요. 하루 종일 남의 눈치를 보며 돈을 위해 달려가는 삶 속에 오로지 나를 위한 행위는 무엇일까요. 추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고통 속에서 기쁨을 찾아내는 것이 삶일까요.
시를 쓰고자 하는 미자는 시를 쓰고 난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차가운 강 위에 떠오른 소녀의 시신 옆에 ‘시’라는 제목이 섬뜩한 영화 <시>였습니다.
https://youtu.be/rdLVqDOmsV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