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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Nov 09. 2022

사랑하면 함께 시간을 보내세요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6년을 키운 아들이 내 아이가 아니었다.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웠다. 다시 찾은 ‘친자’를 키워야 할지 아니면 지금처럼 ‘바뀐 아이’와 살아야 할지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 이 문제는 단순히 누가 누구를 키울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족이란 무엇이고, 또 아빠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결혼을 했다. 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아이가 나처럼 열심히 공부를 해 좋은 직장을 얻기를 바랬다. 그래야 넓고 깨끗한 아파트에서 살며 부러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격한 아빠가 되어야 했다. 1등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고난은 후에 충분한 보상으로 돌려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지금까지 내가 투자했던 시간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래,


세상은 모든 게 투자다. 투자를 통해 보상을 받는 시스템이다. 투자는 이성적인 판단력으로 소중한 현재를 희생해 더 큰 미래를 보상받는 행위다. 그런데 소중한 현재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친자는 시골 전파상을 운영하는 가족에서 키워졌다. 다섯 식구가 좁은 방에서 살고 있었다. 친자는 자유분방했다. 시키는대로 곧 잘 따라하던 바뀐 아이와 달리 질문이 많았다. 왜요. 왜 해야 되는 건데요. 왜 아저씨를 아빠라고 불러야 하는데요. 자꾸만 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그냥.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냥’이 내 인생을 함축하는 말 같았다. 너 왜 열심히 공부했어? 그냥. 넌 왜 그렇게 열심히 일 하고 있어? 그냥. 너는 왜 그렇게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어? 그냥. 그러다가 문득,


아이를 사랑해?…라고 물어오면 ‘그냥’이라고 대답하게 될까봐 무서웠다. 사랑을 굳이 표현한다면 웃음이지 않을까. 나는 언제부터 웃지 않게 된 것일까. 빳빳하게 고개를 들어 넥타이를 매는 내 모습과 엉금엉금 기어 둥물 흉내를 내는 친자를 키운 아빠의 모습 중 무엇이 좋은 걸까. 완벽한 것은 없다. 각자의 기준대로 사는 것이다. 괜찮다. 그러나 지금 내 아이는 행복할까. 그러는 너는


행복하니?


알 수가 없다. 행복이 무엇일까. 복잡한 건 싫었다. 그냥. 그렇게.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친자에게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랑을 주고 싶었다. 웃게 만들고 싶었다. 친자가 원하는 것을 해주기 시작했다. 다정다감한 아빠가 되었다. 스스로 놀라울 정도였다. 나도 이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자가 하늘에 뜬 별을 향해 기도했다. 무엇을 빌었어? 물었더니 아이가 답했다.


진짜 아빠 엄마랑 같이 살게 해달라고요.


우리는 다시 시골 전파상을 찾았다. 바뀐 아이는 나를 피했다. 자신을 이곳에 두고 찾지 않았던 내가 미운 것이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내 아들’들’을 사랑했다. 피와 유전자, 기타 사회적으로 정의내려진 가족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내 방식이 틀렸을지는 몰라도 나는 진심으로 아들을 사랑했다. 그 사랑이 가족을 만들었다. 그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만 모든 것이 빛날 수 있었다. 가족은


사랑을 두텁게 쌓아올린 집이다.


온갖 편견에 길들여진 나를 벗어 던지고, 진심으로 아이를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아빠가 되는 길이었다.  그 상대방이 누구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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