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하얼빈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에 죽었다.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생일이 그 전날이었기 때문에 원래 사형일로부터 하루가 연기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안중근이 쏜 총에 죽었다. 스스로 일본의 속국이 되겠다며 옥쇄를 찍은 을사늑약은 1905년 11월 17일에 체결되었다. 안중근이 죽은 나이가 31세이니 포수 안중근은 27세에 울분을 느끼고 그를 제거하기까지 약 4년이 걸린 셈이다.
그는 자신의 평전과 동양평화론을 옥중에서 썼다. 약 4개월동안 집필한 것이다. 그는 천주교도인이었지만, 천주교에서는 그가 쏜 총알의 의미를 “살인하지 말라”는 계율을 어긴 것으로 보고 공식적으로 그와의 관계를 단절했다. 이후 1993년에 김수환 추기경이 안중근 의사에 대한 추모 미사를 집행하면서 천주교는 한국 독립 운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띄었던 과거의 일을 사과했다.
처자식은 그야말로 불행한 삶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의명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가족의 파탄까지 감당하는 마음은 어떤 걸까. 그런 그의 불가사의한 삶은 순백의 명주옷을 입은 채 교수형으로 끝났다.
소설은 김 훈 작가의 특유의 날카로운 문장으로 청년 안중근을 좇는다. 친절한 설명이나 구구절절한 내용은 없다. 최소한의 문장으로 최소한의 감정을 담아내려 하는 것 같았다. 그 앞에 붙는 수사는 현대인이 감히 담아내기에는 불가능한 안중근의 삶을 구차하게 할 뿐이기 때문일까. 문장에 힘이 느껴져서 가볍게 넘기기 힘들다. 그를 통해 머릿속에 각 현장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 참 신비로웠다.
역사를 배우기도 했고 여러 서적을 펼쳐보기도 했지만 매번 나의 무지는 어디까지일까 부끄러워질 뿐이다.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안중근의 집안과 그의 포수생활. 엉성하지만 묵직한 의거 계획과 실행 그리고 아버지의 의에 반해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에 사과를 했던 자식들의 행적들.
눈부신 경제성장과 문화수출국으로의 도약의 출발은 어디일까 물으면 어쩔 수 없이 독립 투사로 연결된다. 그러나 아직도 잘 모른다. 모른다면서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못했다. 세를 불린 과오들이 언제까지 과거에 매달려 시간을 헛되이 보낼 것이냐고 꾸짖는 시대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역사는 꾸준히 새롭게 쓰여진다. 그 시대 정신에 맞는 메세지를 주기 위해서 활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안중근은 무엇이며, 이 소설은 또 어떻게 읽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