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ypyo Oct 24. 2022

소셜 미디어

 

Social media allows you to see large amounts of your peers’ lives in intimate detail, which can magnify opportunities for comparing your own life to theirs. With so many more people to compare yourself to, and so much more of your time spent looking at these comparisons, college students may have naturally started to find themselves lacking. It would be nice to believe that just by clearing out bots and advertisements, we could make Facebook a healthy source of connection. But it may be the core feature of social media itself—the ability to share private moments of daily life with friends and peers—that actually causes harm.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how-do-you-know/202210/facebook-caused-poor-mental-health-the-beginning




비교하는 삶은 괴롭다. 나는 이러한데 너는 저렇구나. 참 부럽구나. 근데 비교 대상이 된다는 것은 한 편으로는 성장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느슨한 삶에 긴장의 끈을 당겨 허투루 시간을 쓰지 않도록 잡아 주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는 일종의 관계 설정이다. 나를 인터넷 공간에 연결하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업로드를 하기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세상은 보여지는 것에 길들여진다. 그 뒷면에 있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일단 보여지면 그것은 특정한 메시지가 되어서 전달된다. 나는 그 메시지 안에서 가꾸어진다. 현실 세계에서도 그 메시지는 이어진다. 혹시나 가상 세계의 이미지가 깨어져 메시지가 효력을 잃을까봐 현실 세계에서 두문불출하는 경우도 있다. 고통의 시작이다. 내 안에 많은 자아가 서로 부딪힐 때 괴롭다.


반면에 아무리 많은 자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의 충돌을 막고  다스리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창작자 또는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셜 미디어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사람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작품과 삶이 구분되지 않는 사람들을  때면 나는 불편하다. 그래서 소셜 미디어를 하지 않는다. 블로그와 유튜브는  사람 체가 보이지 않고 작품이 뚜렷이 드러나는 것들만 찾아 구독하거나 보게 된다.


그게 좋다.


나는 나이지이만 나로서 충분하지 않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충분하다는 것은 내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다.


소셜 미디어로 인해 우울증을 갖게 되는 주된 이유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한 자의식이다.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타인의 장점을 흡수해  것으로 만드는 창작활동만이  치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접근을 하지 않거나. 그러나 스스로 절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어린 시절에 습득한 절제력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를 과도한 소셜 미디어의 사용의 결과와 연계해서 생각해볼만 하다.


요즘 음악을 자주 만들고 있다. 상상 속의 프로듀서를 만나게 되었기 때문인데, 그것도 전부 유튜브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해(Harm)가 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영감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이 지나면 다른 삶이 찾아올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