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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Dec 18. 2022

그래도 나는 내가 좋아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쓰

다른 세계에 또 다른 내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아무렴 어때, 그것이 지금 내게는 어떠한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기에 상상하는 것은 자유고 재미다. 그러나 만약에 당신이 정말로 또 다른 내가 될 수도 있다면 어떨까. 다중우주 속에 또 다른 나를 만나고 그 기억과 능력을 언제 어디서든 사용할 수가 있다면. 수많은 나를 만나는 여행에서 돌아와서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 안에 진리가 있어 나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대부분의 불행은 후회로부터 시작된다. 만약 그때 내가 그랬다면 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와 같은 가정이다. 고지서 뭉치 속에서 찌들어 한숨을 푹 내쉬면서 후회를 한다. 가정에는 과거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로또만 된다면 문제없을 거야. 마지막 긴 한숨을 내쉬고 0이 되어버린 잔고를 뒤로한 채 일어선다. ​


지친 일상에 재미는 없다. 무엇을 해도 걱정이 앞선다. 여유를 잃은 자에게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 의지 따위는 사치다. 모든 것이 짜증 난다. 삶은 풀리지 않는 문제들에 둘러싸여 있다. 어쩔 수 없이 아무 답이라도 찍어서 넘어갈 뿐이다. 컨닝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곳에 손길을 뻗어보지만 부정한 방법으로는 다시 후회만 남을 뿐 어느 하나 제대로 된 답이 없다. ​


바둥거리다 보면 가까운 사람부터 멀어지게 된다. 가족은 힘이 아니라 짐이 되었다. 말을 듣지 않는 딸은 서로 보기만 해도 싸우는 사이가 되었다. 나를 끔찍이 사랑했던 남편은 이혼 서류를 가져왔다. 세탁방은 압류를 앞두고 있다. 나는 이 세상에 왜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허무하다. 아무런 희망이 없다. 그러다 또 다른 세계에 있는 나를 만났다. 성공한 배우부터 길거리에서 판을 돌리는 알바까지 하는 나였다.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인지 설명하기 힘들었다. 부러워 보이는 삶 이면에는 항상 어둡고 침침한 상처와 아픔이 있었다. 돌고 돌아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다시, 그 볼품없는 세탁방 사장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남편은 ‘전략적으로 긍정적으로 산다’고 했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 거지 같다고 거지처럼 살 필요는 없었다. 자의식에 갇혀 모든 것이 내 식대로 보일 뿐이었다. 세상은 그렇게 차가운 고통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나의 고통과 아픔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그것을 받아들이고 보다 나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 충만한 믿음으로 상대방에게 더욱 따스한 손길을 뻗을 수 있는 용기가 해답이었다.

허무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나를 지울 것인가. 아니다.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살아남아 내가 사랑하는 것을 더욱 사랑할 것이다. 그냥, 그렇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완벽한 것은 없다는 사실은 어쩌면 내가 내 미래를 원하는 것으로 만들어갈 수도 있다는 희망일 것이다.

나는 영화배우가 아니다. 나는 세탁방 주인이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사는 세탁소 집주인 웨이먼드의 아내이자 조이의 엄마인 에블린이다. 니체가 그랬다. 아무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고. 당신 삶이 무한 반복된다고 생각하라고. 후회 없이 살다갈 만큼 지금 당신을 사랑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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