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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Dec 11. 2022

사랑해서 죽였습니다

[영화] 아무르


실수나 실패 보다 어설프게 시간을 허비할까봐 더 두렵다. 나이가 들 수록 더 그렇다. 희소해지면 가치는 올라가고 절박해진다. 죽음이 가까워지는 순간 절박한 일상은 의문투성이로 변한다. 지금 내가 이대로 살아도 좋은 걸까. 나는 제대로 살아왔던 걸까.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까. ​


사랑하는 사람이 점점 죽어갔다. 몸이 굳고, 말이 흐려졌다. 영혼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듯 했다. 넓은 집 안에 덩그러니 남겨진 노부부의 삶은 이제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추억으로 남겨질 날만 기다릴 뿐이었다. 죽음을 맞이하는 노년의 삶 앞에서 세속의 사연은 부질없었다. 신문과 방송에서 떠들어대는 사건사고들은 그저 허공에 뜬 채 유유히 사라졌다.

남편은 피아니스트였던 아내를 그리워하며 녹음된 그녀의 곡을 들었다. 마치 그녀가 피아노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반려자가 이제는 혼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욕창을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게 살아있는 것일까. 회의가 들었다. 뒤뚱거리며 걷는 남편은 이미 자신에게 남은 삶도 얼마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그렇다면 남은 아내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요양원이라도 보내야 하지 않냐는 딸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거칠고 무성의한 남의 손에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아내를 맡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죽음을 눈 앞에 둔 그녀에게는 더욱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아내의 삶을 정리한다.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막상 행동해보니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내를 보내고 그도 곡기를 끊은 채 죽음을 맞이한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문제가 우리에게 남겨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사랑과 죽음과 존재의 이유를 자꾸만 묻게 되었다.

어설프게 살아가는 것에는 대안이 존재한다. 일정 수준의 만족을 경험한다. 과몰입한 상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수를 대비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마치 시소를 타는 것처럼 이리저리 왔다갔다한다. 완벽하지 않기에 실수는 계속된다. 그러나 나의 존재에 회의가 들 때는 항상 스스로 어설프게 나의 삶을 관망할 때였다. 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하든 그 안에 스스로 우뚝 서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것과 함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 주변 시선과 억압을 이겨내는 담대한 용기가 내게 가장 큰 존재의 이유가 되었다. 나의 사랑이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 나는 제대로 사랑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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