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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Feb 18. 2023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까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이 영화가 개봉했던 2001년에는 나는 고3이었다. 음악을 하겠다고, 나는 예술인이 될 거라고 멋도 모르고 떠들다가 늦은 수능 준비를 할 때였다. 영화관에 가기 힘들었던 시골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화는 내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간간히 빌려보던 비디오의 장르는 액션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이 영화가 재개봉했다. 새로운 밀레니엄시대의 서두에 펼쳐진 다섯 명의 청춘은 나의 그때처럼 투박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한 것인지…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 혼란 속의 다섯 친구들은 서로 달랐지만 아주 쉽게 동창이라는 이름으로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서로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았지만 그저 든든했던 시간들.

상고를 졸업한 친구들은 다양한 삶의 현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태희(배두나 분)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찜질방에서 돈을 받지 않고 일을 했다. 혜주(이요원 분)는 금융회사 행정직으로 취업했다. 패턴 디자이너를 꿈꿨던 지영(옥지영 분)은 중소기업에서 일을 하다가 회사가 망해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실업자가 되었다. 쌍둥이 비류(이은주 분)와 온조(이은실 분)는 길거리에서 직접 만든 액세서리를 팔았다. 그들 모두 사회 첫걸음은 무겁고 비틀거렸다. 그래도 혜주는 ‘인서울’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그나마 친구들보다는 처지가 낫다고 자부한다.

2001년에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70%를 넘어섰다. 좋은 대학 진학은 성공한 인생이라는 공식이 IMF 이후 허물어졌지만, 고학력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는 여전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대학에 진학을 했다. 성적에 맞춰 의미를 알 수 없는 전공과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캠퍼스로 내달렸다. 그 나머지, 성적이 어중간한 아이들은 취업이 보장된다는 실업계로 진학했다.

인천 어느 상고 출신 혜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똑 부러지는 성격에 공부도 곧 잘한 것 같았지만, 어서 빨리 취업해 서울에서 살고자 했다. 영어도 곧 잘했다. 업무 능력도 우수했다. 그러나 신분의 벽은 결국 뛰어넘을 수 없었다. 대졸 신입사원들의 시중을 들며 밀려나는 자신의 입지에 망연자실한다.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은 망상에 불과했다.

혜주는 이 공허함을 자신보다 못한 친구들을 보며 해소한다. 최소한 나는 ‘인서울’이다. 나는 어엿한 대기업 금융회사에 다닌다. 직장도 꿈도 없는 너희들. 경제적 가난에 마음까지 메말라버린 너희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우위로 찾은 기쁨은 곧 무너진다.

반대로 태희는 다르다. 자유롭게 세상을 탐험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환경을 끊임없이 바꾸고 싶어 한다. 진정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주변의 시선과 비난은 그들 스스로 우물 속의 개구리인 것을 인정하는 꼴이다. 태희 집 안은 땅을 보고 사는 자와 하늘을 보고 사는 자의 묘한 갈등이 팽배하다.

미련 없이 떠나자. 태희는 매일 결심한다. 단단한 결심으로 인천국제터미널에 있는 선원들이 쉬는 공간에서 “저도 배를 탈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태희. 그러나 세상은 태희를 비웃는다. 자신의 몸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지체장애 시인을 돕는 봉사활동이나 한다고. 너 같은 여자가 어떻게 배를 타겠냐고. 동남아 남자들이랑 어떻게 함께 어울릴 생각을 하냐고.

영화는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은 태희와 판잣집이 무너지며 길러준 조부모를 잃은 채 오갈 데 없는 지영을 마지막으로 비춘다. 그 둘은 함께 떠난다. 공항에 우두커니 서서 어디로 갈지 고민한다. 그리고 결심이 섰는지 뒤를 돈다.

20년 동안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잘 나아갔을까. 나는 어떤가. 왜 아직도 나는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이 20대 청춘에 공감하며 위로를 받을까.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아직도 내게는 어디론가 떠날 용기가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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