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ypyo Feb 23. 2023

내가 알던 내가 아니야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스마트폰을 잃어버렸다. 누군가 주웠다. 그것을 이용해 스마트폰 주인을 살인한다. 방법은 간단했다. 범인은 스마트폰 액정 깨뜨려 주인에게 수리 업체에 맡겼다고 찾아가라고 전한다. 피해자는 수리업체 직원으로 변장한 범인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준다. 범인은 스마트폰 속 파일을 본인 노트북에 옮기고,


스파이앱을 설치한다.


스마트폰은 주인을 문다. 아주 가혹하게 문다. 스마트폰에 연결된 인터넷상의 피해자는 범인에 의해서 하루 아침에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게 된다. 사회적으로 매장된 피해자에게 범인이 손을 뻗는다.


그리고 살인은 벌어진다.


스마트폰에 내 삶이 저장되어 있다. 스마트폰으로 내 세상이 열린다. 범죄자는 스마트폰으로 피해자의 삶과 세상을 파괴했다. 그녀가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킹을 당한 거 같다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외쳐도 아무도 듣지 않는다. 유일하게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제일 친한 친구 단 한 명이었다.


그러나 피해자는 친구를 믿지 못했다. 진심을 알아달라고 외치던 그녀였지만, 정작 친구를 의심했다.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원격조정이 안 된다는 전문가로 위장한 범인의 말에 스마트폰을 만질 수 있었던 사람은 밤새 함께 있었던 친구가 유일했기에.


그러나 이 의심은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 했던 그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과 같은 오류다. 스마트폰이 해킹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전문가로 위장한 사기꾼일지도 모른다는 친구 말을 믿지 못하는 피해자. 티비에서 연쇄살인범 소식을 접했을 때 그저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생각하는 친구.


소설같은 현실을 수긍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런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우습다.


어떤 일이든 발생할 수 있다. 내가 만약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었다면 상대방을 조금 더 이해하려 노력하고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끈질기게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잘못된 전제로부터 발생하는 그릇된 판단과 상상력의 한계로 만들어낸 일차원적 해결 방식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누구나 당할 수 있다는 공감보다는 변명으로 치부하는 동료의 시선들. 너의 말과 행동보다 인터넷상에 공개된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현실. 모든 행동이 데이터화가 되어가는 오늘날에 데이터가 제멋대로 가공되고 조작되어 무너져가는 한 사람을 보는 것은


하나의 고통이었다.


생명은 호흡한다. 현대인은 호흡하는 동시에 접속한다. 생명이 부딪히는 현실 공간과 데이터가 교환되는 가상 공간에서 살아간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진짜고 거짓인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이제는 의미가 없다.


정체성은 현실과 인터넷으로 구분되는 동시에 완성된다.세상은 이로써 더욱 복잡해지고 모순덩어리가 되었다. 범인은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은 자라 밝혀졌다. 그는 아무도 아니었지만,


스마트폰으로 누구라도 될 수 있었던 아이러니가 우리의 삶처럼 보였다.


현실과 인터넷, 그 둘의 조화로 완성되는 정체성. 두 세계를 이어주는 스마트폰. 그 경계에서 우리는 개인정보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는 수밖에 없다. 함부로 경계선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지켜야 한다. 그러나 나의 비밀과 삶과 세상은 과연 나의 노력으로만 지켜질까


영화가 남긴 숙제는 앞으로도 긴 호흡으로 마주해야 할 것이다.


#넷플릭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