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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Mar 01. 2023

별은 혼자 반짝이지 않는다

[영화] 치히로상


외롭다. 지친다. 그래도 어쩌겠어 살아가야지.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 비단,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각자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들

사람의 틀을 쓰고 사는 외계인들

그러니깐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사랑하기 때문에 소유하려 하고,

책임지지 못할 관계에 집착하면 상처만 남는다.


그런데, 가끔 같은 별에서 온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마사지걸 치히로상이 그랬다. 밤길에 덩그러니 버려진 것만 같았던 소녀의 나. 터진 김밥이 맛있다며 웃던 그녀가 건넨 말.


- 밤은 우리 편이야.


그녀가 내 친구였다면, 나의 엄마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이 지독한 외로움을 덜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무엇을 해도 공허한 이 가슴이 조금이라도 채워지지 않았을까.


고독 속에 자란 소녀가 어른이 되어 맞이한 세상살이는 미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해명을 요구하는 매서운 눈빛들.

그 안에서 부풀어오르는 외로움.

솟아오르는 고요속의 외침.


그래서 내가 사랑했던, 나와 같은 별에서 온 그녀를 찾아나섰다. 마사지걸이 되었다. 그곳에서는 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 왜 이 일을 하는 건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저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면 되는 곳이었다. 이곳이 어쩌면 나의 별이 아닐까.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길에 마주친 도시락 가게. 몹시 비가 많이 내려 거리에는 아무도 없고, 상점들은 모두 일찍 문을 닫은 날. 배고픔에 허덕이며 추적추적 길을 걷던 나는 도시락을 샀다. 그리고 물었다.


- 왜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 가게를 열었나요?

- 저는 비가 오는 날이 좋습니다. 혹시 누군가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해서요.


또 다시 나와 같은 별에서 온 사람을 만났다.


애정결핍은 가슴에 흐르던 따스한 온기를 차갑게 식혀버렸다. 완전히 사라질까봐 무서워 어떻게서든 데워야했다. 아픔을 미소로 숨기고, 분노를 친절로 참아냈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모여들었고, 나는 그 많은 관심과 사랑이 다시 사라질까 두려워서 도망쳐야만 했다.


나도 모르게 기대를 하고 기대에 못미치는 사람들을 기다리다 지치는 것이 싫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났다. 새로운 것에 적응하려 발버둥치는 그 순간이 즐겁다. 즐거운만큼 다시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이어지는 관심에 나는 그저 웃으며 속으로 묻는다.


-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여전히 여행중이다. 방황중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 빛을 밝혀주는 것이 나의 숙명이었다.


외로움은 하나의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 별 또한 반짝인다. 외로운 별은 서로를 만나 빛을 주고 받으며 반짝인다.


소외된 발걸음이 하나둘 모여들어 어둠에 불을 피운다.


여전히 삶은 아름답다.




_

많은 질문을 던진 영화였습니다. 무엇보다 지극한 관심이 사랑이라는,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어린 시절 없이 큰 아이는 없습니다. 모든 시작은 어쩌면 흐릿한 기억 저편에 있는 바로 그때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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