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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Apr 25. 2023

오늘 먹은 음식이 당신을 증명한다

유명한 식당 헝거의 요리사 폴은 웃음이 없었다. 그에게 요리는 전쟁이었다. 자신을 특별하게 만드는 의식이었다. 그것을 지속하기 위한 끊임없는 담금질만이 그의 삶에서 유일하게 가치있는 행위였다.


어릴적 아픈 기억이 그런 그를 만들었다. 맛도 없는 비싼 캐비어. 가정부였던 어머니가 자신이 깨뜨린 주인집 캐비어를 배상하기 위한 지난했던 과정.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라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었고, 무엇을 먹느냐는 내가 어떤 사람이냐를 증명하는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너희가 길게 줄을 서야만 만날 수 있는 요리사가 되어 창조주의 반열에 오르겠다. 그렇게 탄생한 부자들이여 나에게 항상 허기를 느껴라는 의미의 식당

헝거(HUNGER).

사람들은 그러한 기이함에 끌리는 것 같다가도 괴리감에 두려워 하기도 한다. 그의 음식을 먹는 것은 성공을 상징했다. 폴은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아우라를 가지기 위해서 하나둘 관계를 끊었다. 하나의 목표에 다가서기 위해서 뜨거운 불 앞에서 섰지만 마음은 차갑게 유지했다. 자신의 말마따나 특별함은 소중한 것을 희생해 얻은 결과였다. 웃음 짓게 할 만한 것들을 제거해나가다 보면 하나의 목표에 근접하게 된다. 그 정상에서 외롭게 홀로 분투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가 선택한 길이다.

웃음이 없는 폴의 음식을 먹는 부자들은 항상 웃었다. 그의 음식을 먹고, 그와 사진을 찍으며 파티를 즐기는 그들은 히죽거리며 자주 웃었다. 미소를 멈추면 삶이 멈출 것처럼. 어쩌면 폴은 그들을 비웃는 방법이 그들 앞에서 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무엇가를 증명하기 위해서 살아왔던 삶이 더 이상 증명할 것이 없어지자 꼬이기 시작했다.

새로움은 무모한 도전으로 완성된다. 그러나 그로 인해서 파국으로 치닿기도 한다. 유명세를 얻고 나서 폴은 자기계발 또는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폭주한다. 그러다 선을 넘게 된다.


폴의 제자 길거리 음식 주방장 오이는 스승의 도덕적 결함을 보고는 헝거를 떠난다. 이후 어느 사업가를 만나 폴을 대체하는 새로운 ‘상품’이 된다. 그녀 또한 자신의 스승과 마찬가지로 극도의 몰입의 과정을 거치게 되고, 웃음을 잃게 된다. 웃음이 사라진 그녀의 얼굴에 비장함이 묻어난다.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다. 진정성. 간절함이란 활은 정확한 과녁에 꽂히지 않은채 무작위로 쏘아졌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꾸만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그녀 또한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위해,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결국 오이는 다시 가족이 운영하는 길거리 식당으로 돌아간다. 지치고 힘들 때 먹던 ‘징징이 국수’처럼 자신의 음식으로 누군가의 허세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쓰리고 차가운 가슴에 온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다시 허름한 주방에 섰다. 변한 것은 없으나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했던 고 성철 스님의 격언이 떠오르는 장면.

누군가 말했다. 네가 무엇을 먹는지 말해주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겠노라고. 사치품 왕국 한국에서 통할 법하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 먹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또 다른 격언이 떠오른다. 삶은 감동의 폭을 넓히는 과정이자(박웅현) 끊임없이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다(천명관). 타인의 기준에 기대여 그것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변 시선에 나를 가두는 것은 삶을 쪼그라들게 하고 수북히 먼지를 쌓기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초라하지만 주어진 나의 재능과 일상을 재료로 나만의 웍(wok)을 휘둘러 소중한 사람들에게 귀한 음식을 내놓고자 한다. 맛있게 드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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