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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Mar 23. 2023

수많은 가능성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

만약 길을 갈 때도, 물건을 가질 때도, 체험을 할 때도, 무언가 시간을 때우려 할 때도 전속력으로 달리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무언가를 할 땐 항상 다른 수많은 가능성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람들이라면-정작 잔뜩 분주하고는 마음에 남는 경험이라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_ 인스피아​, ‘가속사회’ : 자꾸만 빨라지는 세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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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가능성을 좇다가 매몰된 사례는 많다. 나 또한 그런 부류 중에 하나다. 이유는 여럿이 있겠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근본적인 것은 일종의 불안 때문이었다. 불안의 근원은 무엇일까. 잘모르겠다. 알 것 같은데… 결론은 잘 모르겠다. 잘 모르기 때문에 나는 불안을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치병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치료 방법이 없기에 평생 달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그 불안에 적응하고 관리하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불안은 집중력을 흐트린다. 정착하는 것을 힘들게 한다. 도태되는 것은 아닐까. 이대로 나는 밀려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매번 고민만 한다.


그래서 자꾸만 기웃거린다. 여긴가? 아님 저긴가?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껍데기만 남는다. 더 좋아보이는 곳으로 달려 나간다. 잠깐의 안도감이 든다. 그러다가 이렇게 머뭇거리다가 곧 뒤쳐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도 모르냐는 핀잔을 받고 있는 나는 이미 트렌드에 뒤쳐진 상태다. 그래서 해본다. 재밌고 재능도 있는 거 같다. 어쩌면 이것은 불안을 잠재울 신약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일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효과 없음’으로 판명난다. 또 다른 것들이 내 삶에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저 문을 열고 나가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던 일을 내버려둔 채 나가본다. 문은 닫혔고, 삶은 또 엉망이다.


그래서 시류에 몸을 맡긴다. 도파민 분비 시작. 만족스럽다. 최대한 빠르게. 얼리어답터. 트랜드를 선도하자. 멀티플레이어. 연쇄창업자. 빨리 망하고 재도전. 그러다가 잠시 멈춘다.


수많은 가능성에 매몰되어 허우적 거리는 것과 나의 신념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묵묵히 언덕을 오르는 것은 다르다. 군중 속에서 얻는 안식과 외롭게 홀로 끈질기게 버티는 인내의 결과는 다르다.


그래서 일단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다. 투 두 리스트를 지우고 두 낫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잠을 충분히 자도록 했다. 변화에 주목하기 보다는 변치 않는 가치들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물질적 풍요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안정적인 정신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고민의 강에 던진 낚시 바늘에 걸려 올라온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이 정답인지 아닐지 나는 모른다.

그리고 그 정답이 나에게만 해당될 지 보편적일지도 나는 모른다. 다만, 나는 그저 내 삶이 풍요로워지기를 바란다.  채워서 넘치는 것이 아니라 비워서 느긋한 상태다. 노력은 모든 결과의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 노력이라는 것은 그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고통과 힘의 이미지와는 달리 여유로워지는 거였다. 나의 리듬으로 춤을 출 수 없거나, 긴박하게 쫓겨서 뛰어야 하는 상황과 그것을 종용하는 사람을 벗어나는 노력. 그렇게 단순해지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어느 하나에 집중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를 통해 얻는 만족감을 하나둘 늘여가자는 것이었다.


WBC를 우승한 일본 국가대표 야구팀의 오타니 선수가 화제다. 실력과 인성 모두 완벽해 만찢남이라고 불린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아 그의 행적을 잘 모른다. 다만, 그가 만들었다는 만다르트는 알고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서 단순한 루틴을 반복하는 것이 만다르트의 핵심이다.


나의 패턴은 아주 단순하다. 그래서 너무 좋다. 익숙해져 서두르지 않으니 분주하지도 않다. 이 루틴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에는 의심하지 않는다. 상승 추세란 본질에 집중하고 시간을 쌓은 노력이 시대 흐름에 맞아 떨어져 경쟁력이 되는 순간을 의미한다. 그렇게 어느 순간 막힌 고점을 뚫고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아침 아들이 양치를 스스로 하는 모습을 대견하게 지켜봤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새롭게 도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습관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단다.”


내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좋은 습관을 가지지 않거나 단순명확해지지 않으면 또 다시 불안이라는 병이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집중하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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