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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May 23. 2023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영화]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사르트르의 명제다. 해리스는 크리스챤 디올 드레스를 사러 영국 런던에서 프랑스 파리로 간다. 그녀는 가정부였다. 우연히 부잣집 청소를 하다가 눈부신 드레스를 보게 된다. 잠시 혼이 팔려 있다가 브랜드 이름이 크리스챤 디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그 드레스 값이 500파운드라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당시 1950년 후반이었고 현재가로 따지면 몇천 만원에 달했을 것이다.


가난한 가정부였던 그녀는 드레스 한 벌이 자신의 전재산을 훌쩍 뛰어 넘는다는 사실에 주눅이 들었다. 그러나 영화는 이때부터 시작이다. 그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돈을 모아서 드레스를 사기로 ‘결단’을 내렸다.


어쩌면 배부른 소리에 과대망상 같은 결단을 영화에서는 그녀가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본질’로써 해석한다. 늙은 여자 가정부라는 ’실존‘에 맞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 모든 사물과 정신으로부터 독립적이고 귀한 본인의 꿈인 ‘본질’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녀는 가난하게 태어나 사랑하는 남편을 만났다. 종전 후 몇년 간 연락이 없던 남편을 기다렸지만 끝내 돌아온 건 전사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특유의 친절과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그러던 중 삶의 의미로 다가온 것이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것이었다.


디올은 서민에 어울리지 않는 명품이었다. 그녀는 그 드레스를 산다고 하더라도 그에 어울리는 삶을 꾸릴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드레스 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녀의 진정성이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정해진 규칙과 틀에 갇혀 살아가던 디올의 사장, 회계사, 모델, 봉제사부터 친구들까지 그녀를 통해 본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나는 편견에 길들여지게 되었는지 묻게 되었다.


그리고 사르트르가 강조했던 내동댕이 쳐진 현실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한 삶이 시작되었다.


영화는 이러한 메시지를 아주 가볍고 재밌게 전개한다. 관객은 해리스의 유쾌하고 엉뚱함에 미소를 짓지만, 그 안에 담긴 실존주의 메시지를 떠안게 된다. 그것은 불쾌하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오히려 아, 내게도 내가 가장 소중한 무엇인가가 있었지 혹은 나는 왜 아직도 저렇게 간절히 원하던 것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 나는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왔던가 아니면 누군가 정해준 길을 순종하며 따라왔던가 고민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라고 하기에는 억울한 면이 많다. 다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 과연 이것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존재에 대한 본질적 투쟁을 해왔던 가라는 반성은 해야만 할 것이다.


모든 기회와 가능성은 지금 나를 둘러싼 익숙한 것들과의 작별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무엇인든지. 내가 원하는 것이 생겼다면 도전해 볼만 하지 않을까.


사르트르는 또한 이 말도 남겼다. “내가 누구인가를 묻기 전에 나는 누구이고 싶은가를 물어라.” 그리고 그보다 훨씬 전에 공자는 말했다. “군자불기, 군자는 그릇처럼 정해진 쓰임이 따로 없다.”


지금 우리는 이제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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