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2)
- 미스코리아 봤어?
- 아니.
- 저게 무슨 꼴 이래.
- 왜?
- 기생도 아니고, 아니 그것보다 더 한 한복을 입고 나왔어.
- 갑자기?
- 수영복 콘테스트 없애고 추가한 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 보는 사람 입는 사람 모두 민망한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얼마 전 미인대회에 관한 뉴스를 보고 나서 와이프가 말했다. 성감수성이 예민해진 작금에 여성을 세워두고 여럿이 앉아서 누가 더 이쁘고 이쁜 척하는가를 보고 평가하는 덜 떨어진 문화가 아직도 방송된다는 사실에 조금 의아했지만, 어쨌든 한복과 미인대회라는 공식이 조금은 새로우면서도 궁금하긴 했다. 한복과 미인과 더불어 기생이라는 단어가 연결되자, 아차 싶었다. 여성에게 진선미를 뽑는다는 의미는 아직도 누가 얼마나 더 성적인 매력을 뿜어 내는가로 해석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코리아 대회는 1957년에 한 신문사가 주최하여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출발이 일제시대에 잡지 홍보를 위해서 여성의 상반신을 나열하여 누가누가 더 이쁜가를 두고 투표하는 이벤트였다고 한다.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보면 흥행을 위해 이런 잔꾀를 쓴 발행인 김동환은 돌 맞아 죽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한 미인대회는 연예계 입문장이 되었고, 뇌물 등의 숱한 스캔들을 뿌리며 근근이 존속하더니 결국 올해 여성단체가 인권위에 폐지진정서를 정식으로 접수하였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한 이 대회 관계자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짜내고 짜낸 것이
한복 콘테스트이다.
참 생각 없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구나 하다가도 뭐 이런 일들이 어제오늘 일인가 하며 대충 넘겼다. 그러다 이 대회 한복을 디자인한 디자이너가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비판적인 시선에 대해서 공감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어 이 사건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지식인의 지식 안에서의 매몰이다.
지식인이 자신의 분야에만 갇히면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디자이너의 인터뷰 요지는 한복의 외형을 빌려 모던함을 추구하면 우리 것의 세계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작업은 의미 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그런 성과를 얻고 있다고 자부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 원수의 한복까지 짜 맞춘 수십 년 경력의 대가가 행간을 읽지 못하고 자신의 분야에 매몰되는 현상을 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대중과 전문가의 시선이 같을 필요는 없고, 같을 수도 없다. 하지만, 지식인일수록 이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이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책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스코리아 대회는 성을 상품화하는 하나의 이벤트일 뿐이다. 누군가 거창한 가치를 부여한다고 해서 그 형식이 같은데 뿌리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그 대안으로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상을 재정의해보겠다며 뒷전으로 물러 나있던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콘셉으로 바꾸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는데 있어 구태의연한 과거를 기억하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역사적인 활동으로 더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최 측은 돈이 되는 장사를 놓칠 생각은 없었고, 시대정신보다 관습을 중시했다.
겨우 내놓은 것이 민망한 수영복 심사를 뺀다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고작 수영복 같은 한복을 입히자였다. 이 디자이너가 제대로 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면(그것도 여성이다.) 이런 제의는 거절했을 것이다. 만약 수락을 했더라도 노출이 아닌, 한국의 미를 강조한 현대적인 디자인이 나왔을 것이다.
이러한 대중들의 꾸짖음을 고증이니 뭐니 들먹이며 자신의 전문성으로 무장하여 상대방에게 덤벼드는 태도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지식인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를 보고 배우는 제자부터 시작해 연구의 결과를 수용하며 살아가는 대중들까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등불이 될 수도 있는 존재이다. 아쉬운 부분이 많다.
인터뷰 기사: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