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순환과 선순환의 고리
마감이란 단어가 여러 용도로 쓰일 때 씁쓸하거나 개운하거나 보람되거나 하는 경우들이 있다. 고군분투해서 나의 정성을 쏟은 결과물을 떠나보내는 것을 두고 마감했다고 할 때는 어쩐지 내 인생이 보람찬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그러하지는 않다.
마감을 놓친 보고서나 원고 등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얼마 전까지 솔로였던 그녀에게 새로 생긴 남자 친구의 존재를 모른 채 고백하는 것 같은 별 볼 일 없는 나와 마주한다. 그럴 때, 지나간 것은 마감시간만이 아니었다. 내가 상상했던 미래 또한 나로부터 멀리 멀어져 간다. 익숙해지고 싶어도 정들지 않는 허무한 이런 일상은 맥주캔 따는 소리로 다독였다. 그런 하루가 쌓여가면 무탈하게 소리 없이 지나간 오늘이 거창한 내일의 희망보다 더 소중한 날이 되곤 했다. 이대로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당도한 퇴근의 종점, 현관문 앞에는 쌓인 종이박스가 보였다.
'오늘은 또 뭐가 왔을까.'
자정 전에만 주문하면 이튿날 문 앞에 배송되는 편리한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다. 멍하니 영화를 보다가 문득 필요한 무언가가 떠오르면 몇 분간의 검색과 간단한 정보 입력을 통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세상이다. 놀라운 문명의 혜택을 체험하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편리한 만큼 밤새 누군가를 괴롭힌 건 아닐까 하는 미안함이 들었다. 하루하루 모이고 모인 배송의 흔적이 어쩌면 우리 사회를 망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죄의식이 들기도 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서 종이박스로부터 뜯겨 나온 플라스틱 더미를 바라보니 그런 생각이 더 깊어졌다. 이 거실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파괴물들. 그러다 갑자기 오늘 아침 기사에 등장한 바다거북이가 떠올랐다.
플라스틱으로 마감한 바다거북이의 생(生)
바다 거북이를 볼 일이 거의 없다. 더욱이 플라스틱을 먹고 삶을 마감한 바다 거북이는 더 하다. 하지만, 매체에서는 연신 미세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바다 거북이를 비추며 심각한 환경파괴를 우려하는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가 배출한 플라스틱으로 바다거북이 같은 해양 동물이 1년에 5000마리가 생을 마감하고 있다. 한국의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파괴 기여도가 0.55% 이내이고, 7종에 불과한 바다거북이 중 그 한 종의 개체수가 80만 마리 이하라고 한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이 파괴적 행위를 간과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뭐 멸종하는 동물이 하나 둘이겠냐 또는,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는 식으로 대충 둘러댈 수는 있겠지만,
나는 여기서 바다 거북이의 죽음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에 주목한다. 또한 무심히 저질러진 나의 행동의 패악 또한 상기하고자 하고, 삶을 피폐하게 하는 악순환을 돌아보고자 한다.
이것은 자연사가 아닌 타살이고 명백히 의도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의 편리가 다른 누군가에게 불편을 넘어 생명을 위협한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속 가능한 시스템은 에너지가 재생되는 구조에 있다. 어떤 행위가 미래를 위한 에너지로 다시 쓰일 수 있을 때 우리는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공부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도 어떤 의미를 두고 장단점을 논의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가치 있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 좀 더 안전하고 윤택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먹는 행위 또한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을 얻는 행위이고, 기술개발은 생명을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며 존속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한다.
돌아보면 사계절은 순환하며, 썩은 몸은 거름이 되어 다음 생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자연의 법칙과 닮았다. 반대로 자연스럽지 않은 인위적인 것들은 쌓이고 쌓여 질서를 어지럽히고 심해지면 암덩어리처럼 온갖 질병과 죽음의 원인이 된다.
때문에, 플라스틱 소비 행위가 우리 삶에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내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편리로 개발된 플라스틱이 환경파괴로 이어지면서 우리 삶을 황폐하게 만든다면 득 보다 실이 더 큰 '악순환에 기여하는 존재'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 행위를 멈추거나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엄마가 나쁜 친구와 어울리지 마라고 했던 말을 상기하며 습관처럼 멀어져야 한다. 대신에 거북이 콧구멍에 꽂혀 있던 플라스틱 빨대 대신에 물에 녹는 종이 빨대를 만들었 듯이 친환경적인 포장재와 일회용 용기 등의 좋은 친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현재 대체 플라스틱 개발은 활성화되어 있으며 상용화를 위한 노력도 꾸준하고 플라스틱 사용 제한을 위한 법적 제재도 가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우리 인식의 변화와 나쁜 습관도 버려야 한다.
인간의 뇌는 효율적이다. 플라스틱 사용은 그 활용에 있어 아주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우리 스스로 조절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그 결과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책임을 물어 올 것이다. 편리하고 효율적인 것이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완성시킨다고 하여 모른 채 할 수는 없다. 타조가 머리를 땅에 박는 것과 같은 인지 편향의 하나의 형태인 타조 효과(ostrich effect)와 같다.
어쨌든, 바다거북이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행위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하고 있다. 눈앞의 이익이 미래를 보장할 수는 없다.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위한 존재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불가역적인 행위들을 뒤늦게 인지하였다고 하더라고 반성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자세부터 가져야 더 나은 미래가 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아침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에 한 무더기 모아둔 플라스틱을 버리면서 제발 버려지지 않고 재활용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이런 나도 참 웃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