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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Jun 23. 2023

류이치 사카모토


표현이란 결국 타자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 타자와 공유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고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추상화라고 할까, 공동화라고 할까,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면 개인적인 체험이나 아픔, 기쁨은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절대적인 한계가 있고,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결손감이 있다. 하지만 그런 한계와 맞바꾸어 전혀 다른 나라,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함께 공동으로 이해할 수 있는 모종의 통로가 생긴다. 언어도 음악도 문화도 그런 것이 아닐까.





룰을 외우고 그 룰대로 뭔가를 축적해나간다. 일반적으로 성장이란 그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런 생각과 어딘가 항상 어긋난 듯한 느낌이 있었다. 공부를 하면 뭔가를 잘할 수는 있겠지만, 왠지 생리적으로 그런 과정이 내게 맞지 않는 듯했다.




인간이 자연을 지킨다, 라는 식으로 우리는 말하곤 한다. 환경 문제를 언급할 때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건 발상 단계에서 부터 잘못 짚은 말이다. 인간이 자연에 거는 부하와 자연이 허용할 수 있는 한계가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패자가 되는 쪽은 당연히 인간이다. 즉 난처해지는 쪽은 인간이지, 자연은 전혀 난처하고 말 것도 없다. 자연의 거대함, 강함에서 보자면 인 간이란 정말 한주먹감도 되지 않는 소소한 존재라는 사실을 그 여행 내내 얼음과 물의 세계에서 보내면서 끊임없이 느꼈다. 그리고 인간은 이미 없어도 좋을지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



사카모토 류이치를 잘 몰랐다. 그의 유명한 연주곡을 간간히 들었을 뿐이다.



유희열 대표의 표절 이슈가 터져나왔을 때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 사건 이후 그의 투병 소식이 들렸고, 곧 이어진 부고가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유튜브에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플레이리스트가 굉장히 많이 생성되었고 몇몇은 자주 듣게 되었다.


https://youtu.be/GTMcaAKXxAY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 갔을 때 그의 자서전이 새로 들어온 책 코너에 꽂여 있는 것을 보자말자 읽게 된 것은 어떤 특별한 끌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특정하기 힘든, 무경계의 표상에 대한 경외와 동경인 것 같다.



책은 그가 어느 잡지사에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봤던 기사를 모아 출판된 것이었다. 1952년에 태어난 그의 이야기는 2009년 그린란드를 다녀와 품게된 자연과 인간에 대한 고뇌를 담은 에필로그로써 마무리 된다.



이후 그는 실험적인 음악을 많이 했고, 우리나라 영화인 <남한산성>(2017년, 황동혁 감독)의 음악을 맡으면서 다시 친숙한 모습으로 만났던 기억이 있다.



그의 다큐 ‘코다’에서의 그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반열에 들어간 거 같았다. 정말이지 본인이 만든 세계 속에서 부유하는 비행선 같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천재는 이렇구나 하는 감탄이 이어졌다. 그의 삶은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마주한 것들 속에서 흥미로운 것들에 도전했고 곧 잘했다.



대학 입시부터 월드투어까지 많은 예술가들이 부러워할만한 커리어를 너무나 당연하게 이뤄냈고 가볍게 받아들였다.



며칠동안 그가 속했던 테크노 음악의 시조라고 불리는 밴드 YMO 음악을 자주 들었다. 그는 그의 멤버들과의 만남 속에서 자신이 배운 지식을 경험을 통해서 체득한 그들에게 신선함을 느꼈다. 지식은 절대 감각을 뛰어 넘지 못한다.


https://youtu.be/kcfJkH2gbcc

https://youtu.be/5bOkWTprifg


억지로 되는 것은 없다는 생각. 그저 자신 앞에 높은 일들에 집중하고 묵묵히 해낼 뿐이었는데 하나의 작품이 되는 삶. 하나의 운명론적 인간.



그의 대표곡인 Merry Christmas, Mr. Lawrence 또한 어떻게 썼는지 모르게 정신을 차려보니 완성되어 있었다고 했듯이 지금 내가 몰입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 나를 이끌고 가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도를 도라고 부르는 순간, 더 이상 도가 아니라고 했던 그 말이 어렴풋이 느끼게 되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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