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악의꽃] 알바트로스 - 샤를 보들레르
뱃사람들은 아무 때나 그저 장난으로,
커다란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네,
험한 심연 위로 미끄러지는 배를 따라
태무심하게 나르는 이 길동무들을.
그자들이 갑판 위로 끌어내리자마자
이 창공의 왕자들은, 어색하고 창피하여,
가엾게도 그 크고 흰 날개를
노라도 끄는 양 옆구리에 늘어뜨리네.
이 날개 달린 나그네, 얼마나 서투르고 무력한가!
방금까지 그리 아름답던 신세가, 어찌 이리 우습고 추례한가!
어떤 녀석은 파이프로 부리를 때리며 약을 올리고,
또 다른 녀석은, 절름절름, 하늘을 날던 병신을 흉내 내네!
시인도 그와 다를 것이 없으니, 이 구름의 왕자,
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건만,
땅 위의 야유 소리 한가운데로 쫓겨나선,
그 거인의 날개가 도리어 발걸음을 방해하네.
<알바트로스 - 보들레르 「악의 꽃」 中, 황현산 옮김>
누구나 위대한 존재가 될 가능성을 품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모든 이의 가슴마다 하나의 능력과 하나의 열정과 하나의 운명을 주었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아직도 내가 만족하지 못한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나의 재능이 알바트로스 긴 날개처럼 지상 위에서 그 쓰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을 인지한 자는 언제고 날아오를 준비를 마치기 위해서 무거운 운명의 짐도 거뜬히 들고 일어설 수 있으리라.
하지만 누구나 이런 사실을 아는 것은 아니다. 종일 비관적인 생각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안타깝게도 자신의 숙명을 등진 자들이다. 인간이란 원래 나약한 존재가 아니던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자의인지 타의인지도 모를 때가 많다. 내가 한 말이 누군가의 생각인지 진짜 나의 생각인지 헷갈리는 것처럼 말이다.
집 앞 놀이터. 매일 외롭게 늦은 저녁을 기다리는 어린아이들. 까맣게 떼가 얼룩진 그들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따뜻한 밥 한 끼가 아니라 지금 당장 저희를 품어줄 부모의 넓은 가슴일지도 모르겠다. 녀석들도 나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빠 엄마와 함께 나온 두 뼘이나 작은 키의 꼬맹이가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할 수 있다. 단지 나는 하지 않을 뿐이다. 조금만 지나면 나도 선택받은, 사랑받는 아이가 될 것이다. 그때는 세상이 바뀔 것이다라고.
이렇게 하루치의 희망을 계속 이어가면서 현실은 점점 어두워지고 본래의 모습을 지워간다. 그래서 결국 녀석들은 작은 불빛 하나 의지한 채 내 삶 속의 이방인이 되어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소리치던 앙칼진 목소리와 과장되고 헛한 몸짓도 서서히 침묵으로 변할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을 조금 더 건조하게 바라보게 될 때, 자신을 피해자로 몰아간 존재들에 대한 복수가 가슴에 새겨질 것이다. 더불어, 내 곁에 머물러 작은 안식의 숨을 불어넣어준 존재들에게는 감사할지도 모르겠다.
그 감정들이 적절한 순간을 틈타 물질적으로, 체계적으로 표현되는 순간. 알바트로스가 날개를 펼치 듯, 신의 목소리가 영감이 되어 울리 듯, 창공의 왕자가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들 중 몇몇은 이런 기쁨을 기어코 맞이할 것이다. 결국 일어서는 것이다.
두어 바퀴 둥글게 꼬인 미끄럼틀에 이와 같은 녀석들이 남기고 간 상처를 보며 글을 남긴다.
지상이가 노는 모습으로 보고 만든 노래 zeesang
2019.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