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eynote

이사

by 랩기표 labkypy



한밤에 후배 녀석이 갑자기 문자를 보내 물었다.


“형은 돈도 명예로 안 쫓는 거 같은데, 삶의 목표가 뭐예요?”


나는 부와 명예를 소중히 여기지만, 후배에게 그렇게 비춰졌다니 다소 의외였기는 했으나, 세속에 묶이지 않은 사람처럼 칭찬하는 거 같아서 약간 우쭐해졌다가, 다시 금세 민망해졌다. 그리고는 나는 짧게 답장을 보냈다.


“창조”


이 날은 어머니께서 이사하는 날이었다. 20년 넘게 살았던 곳이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에 있는 내게 어느 날 갑자기 원래 있던 집은 없어졌으니 주말에는 이모집에 있으라고 한 뒤 간 곳이었다.


이삿짐 업체 직원들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부터 집 앞에 모였다. 그 안에 알바도 있고, 정직원도 있고…작은 포터는 하청을 받은 것 같았다.


그들은 누군가의 신호에 의해서 익숙한 일들을 시작했다. 나는 그들 뒤에 서서 하는 일을 바라보았다. 어머니께서 이런 저런 일을 부탁하셨고, 나는 가끔 그 부수적인 일들을 수행했다. 이사가는 집이 근처라 사다리차와 트럭이 주차할 수 있게 자리를 만들었다.


이사는 아침 7시부터 시작했는데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모든 짐들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삿짐 업체 직원들은 고생했다는 인사와 함께 저녁 노을 사이로 각자 흩어졌다.


남은 것은 이제 어머니, 나, 큰 동생 남편 뿐이었다. 큰 서방도 아이 때문에 곧 떠났고, 어머니와 나는 첫끼를 먹었다.


짐은 많았다. 한 사람의 짐이 이렇게 많다니… 다 둘 데는 있을까 궁금했다. 이게 모두 삶의 흔적들일까. 내 눈에는 불필요해 보이는 물건들도 어머니께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거겠지. 덜어내는 삶이 이토록 힘든 것일까. 또, 이렇게 두면 안 좋아 보이는 배치도 어머니께서는 다른 생각이 있으신 거겠지. 내가 있을 곳은 아니니 원하시는대로 맞춰드리자. 이런저런 생각들이 새로 도배한 방 구석구석을 타고 이어졌다.


이제 혼자서 남은 짐들을 정리할 어머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언제 끝날까. 저 짐들은 또 어디로 가게 될까. 무거운 짐이 있으면 혼자서 들 수는 있을까.


그런 근심을 안고 집에 왔을 때, 후배로부터 문자를 받은 것이다. 그러게… 우리는 왜 그토록 삶에 열중할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하루하루 버텨내며 살아가는 걸까. 왜 이렇게 모으고 쌓으며 살아가는 걸까.


약간의 쓴웃음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삶이 좋았다. 새롭고 즐거운 경험들이 기다리는 세상. 아직 다 이루지 못한 내 나름의 과업들.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


누가 알아봐주는 건 성공의 잣대가 되기도 하고 보상의 의미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에만 나를 두면 예상치 못한 고난에 더 큰 상처를 받을까봐 두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길은 내가 있는 곳을 밝히고, 내가 하는 일에 진심을 쏟고, 좋아하는 일에 몰입해 나가는 일이다.


이 모든 일에는 특별한 의미는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기에 기쁜 일들이 있어 족하다.


오늘보다 나아진 나를 만나러 가는 길, 그 여정이 즐겁다.


여기서 저기로… 무슨 일이 또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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