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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Apr 17. 2024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

[책] 단 한 사람


목화는 꿈에서 사람을 살렸다. 그 능력이 어디서부터 왜 자신에게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다. 할머니, 엄마 그리고 나. 3대로 이어진 이 능력은 축복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다. 이 저주에 걸린 여인들은 각자 나름대로 이 상황에 대해서 정의를 내렸지만 살리고 싶은 자를 살리지 못하는 한계, 사회악도 살려야만 하는 불합리 앞에서 똑같이 절망한다. 이 억울한 운명에 반항을 해보지만 벗어날 방법은 없다. 적응하는 것이 전부다.


적응한다…우리는 모두 어딘가에 적응한다. 태어난 환경에 적응하고, 내 앞에 놓인 문제에 적응한다. 경험이 쌓이면 그것을 수단화하여 목표 달성을 위해 적용한다. 인생은 적응과 적용의 연속이다. 과거의 경험과 지식으로 길을 닦아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모두 인간의 속성은 비슷하다. 그저 기술적인 혜택에 따라 삶의 질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아직도 도파민, 전두엽과 같은 일상을 지배하는 용어들에 대한 접근법은 진화론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적응과 적용의 고리 안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목화처럼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면 어쩔 줄을 모르게 된다. 모든 슬픔과 고통은 개별적으로 특별하겠지만 그럼에도 비슷한 해결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성공의 길을 자세히 살펴봐도 그 원리 원칙은 비슷하다. 그럼에도 각자의 삶이 너무나 분명하게 나누어지는 것은 그건 모두 개인의 일이기 때문이다. 합리적, 객관적 사실은 개인의 서사가 아니라 대중의 서사다. 우리는 개인의 서사 안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기 때문에 대중의 서사 안에서, 특히 적응과 적용 그리고 작용과 반작용 같은 원리 안에서는 한없이 나약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목화가 그랬다. 꿈을 통해 목숨을 살리는 “중개” 행위로 인해 삶은 혼란스러웠다. 대중의 서사에서 적응할 수도, 적용할 수도 없기에 명확한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한 가지 답을 낸다. 바로 “단 한 사람”이 자신에게 허락되어 있고, 자신도 단 한 사람일 뿐이며, 단 한 사람의 몫에 대해서만 생각하자는 의지였다.


그녀의 능력이 4대로 되물림되면서 조카에게도 같은 증상이 발생했다. 언니 딸은 그녀에게 이것은 아주 멋진 일이라고 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지만 그럼에도 단 한 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냐고.



***


소설의 시작은 나무로 시작해서 나무로 끝난다. 이 모든 특이 현상은 몇백, 몇천 년된 나무의 저주로 시작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미약한 인간은 가늠하기 힘든 세월을 품은 나무를 잘라낸다. 그리고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땅을 다지고 이기의 표상을 세운다. 언젠가 무너질 것이라는 불안에도 온 몸을 덮친 욕망 안에서 꿈틀대며 기어가고 있다. 이때, 누군가, 우리가 파괴한 누군가로부터 중개를 받은 자가, 단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그렇게 살아남은 자에 아무런 이유가 없다면.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그 명확한 이유라는 것이 언제부터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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