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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May 29. 2024

나라고 다를까

[넷플릭스 시리즈] The8Show

1층은 서커스 단원이었다. 가난했지만 정직하게 살았다. 정직하게 살면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의 아이는 희귀병에 걸린다. 돈이 없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한다. 쫓겨나가듯 아이를 병원에서 집으로 데려가던 그 날, 그는 한 가지 결심을 한다.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돈을 벌기로 한다.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보험금으로 아이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사는 게 쉽지 않았는데, 죽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도로 한복판에서 비장한 시도가 우습게 무너질 때였다. 그 앞에 리무진 한 대가 멈춰섰다. 그리고는 이 게임이 시작되었다.

도착한 곳에는 8장의 카드가 있었다. 1부터 8까지 숫자가 써져 있었다. 한 장의 카드를 골라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되었다. 언제나 남들보다 뒤쳐져 살았던 그는 ‘1’이라는 숫자에 끌렸다. 각 숫자는 층수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1은 1층.

한쪽 다리가 불편한 서커스단 멤버였던 그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지 않아도 돼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이 게임은 돈을 버는 게임이었다. 그렇다고 서바이벌식 경쟁구조가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돈이었다.

1분에 만원.

하루에 1440만원.

이렇게 며칠만 지나면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었다. 희망이 보였다. 문제는 다른 층들은 더 많이 번다는 사실이었다. 피보나치 수열의 원리로 윗층으로 갈수록 1-2-3-5-8-13-21-43만원 순으로 벌었다. 8층은 하루에 4억8960만원을 벌었다. 이곳에서도 그는 제일 가난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만족스러웠던 조건에 불만이 생겼다.

시간은 CCTV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맘에드는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늘었다.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없었고, 기준도 몰랐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그러나 노력의 대가는 1층보다 8층이 더 가져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주어진 숙명을 받아들이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8층은 예술가였다. 자신의 원하는대로 행동했다. 공감 능력은 떨어졌다. 듣도 보도 못한 이 게임을 즐겼다. 일종의 현실도피이자 이상실현 같았다. 더구나 자신은 8층이었고 돈은 자꾸만 쌓여갔다. 입고 싶은 옷을 입고, 원하는 물건을 샀다. 현실과의 물가 차이가 100배였지만 8층은 감당이 가능했다. 못 가진 자들은 그녀의 사치와 즐거운 표정을 보고 정신 못차린 여자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8층과 자신들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8층은 돈과 더불어 권력을 가지게 된다.

바로 밥이었다.

주최측은 음식을 8층을 통해서 전달했다. 8층은 방 안에 설치된 물건을 싣고 나르는 엘레베이터를 통해 음식을 밑으로 내렸다. 그녀는 아랫층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하면 음식을 내리지 않았다. 아랫층은 굶주리고 목이 말랐다. 그녀가 원하는 바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일찍이 타협한 자들은 8층 곁에 섰다. 변하지 않는 현실을 인정하고, 빠르게 순응했다. 8층을 왕으로 모시며 그에 붙은 달콤한 권력을 조금씩 나눠가졌다. 8층을 중심으로 한 몇몇 사람들은 아랫층 사람들에게 시간을 버는 일을 시켰다. 나와 너는 다르다. 그것이 이유가 뭐였든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굶주림에 허덕이고, 목이 타들어가는 아랫층 사람들은 순한 개가 되었다.

주최자들을 기쁘게 할 게임은 갈수록 잔인해졌다.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려야 겨우 하루 이틀 연장할 수 있었다. 이것이 주최자들이 원하는 것인지 알수는 없었다. 한가지 확실한 건, 8층이 원한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랫층 사람들은 그만두지를 않았다.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벌겠다는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8층은 이런 모습을 즐겼다. 그리고 극한의 상황으로 치닿은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밤을 세워 그림을 그리고 남는 돈으로 골프채를 사 연습을 했다. 예술이란 원래 그렇다고 했다.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을 시도하는 것으로부터 얻게 되는 새로움.


https://youtu.be/jhze04Gesmg?si=EemvuBA-_H7Ltoag


넷플릭스 시리즈 <The 8 Show>는 우연히 하루에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게임에 참가한 이들을 통해 부와 권력을 탐하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준다.

현실감 없는 행위 예술가, 대중성보다 예술성을 지향하는 영화 감독, 폭력 전과로 몰락한 야구 선수, 주체성이 낮은 부잣집 여사, 자존감이 낮은 아이돌 지망생, 삶의 의지를 잃은 청년, 가난한 노동자와 순진한 광대가 바로 이 쇼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이 한 데 모여 선을 넘는 사건이 계속 벌어진다. 우연히 선택한 자신의 지위로 삶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피보나치 수열로 설계된 층별 수익 구조속에서 논리와 합리성이 결여된 자에게 주어진 부와 권력으로 인해 말살되는 인간성의 서글픔이 눈에 띈다. 더불어, 그들의 의지와 별개로 정해진 운명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부조리가 보인다.

우리 모두 각자의 상황에 따라 이입되는 캐릭터는 다를 것이다. 만약 7층이 8층에 있었다면, 3층이 8층에 있었다면 상황은 다르게 흘러갔을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토록 무지막한 세상에서 우리가 견지해야 하는 삶의 태도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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