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eynote

힙한 꼰대

우린 전부 꼰대다

by 랩기표 labkypy

안 그래도 시끄러운 세상인데, SNS로 더 떠들썩해졌다.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럽고 불성실하고 눈에 거슬리고 그렇다고 딱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말들이 흘러넘친다. 그냥 싸대기 한 대 발라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문득 나는 뭐 그리 잘 났나 하는 생각에 들었던 손을 모아 명상을 한다.

'핫하다'는 단어와 '힙하다'는 단어가 자주 보인다. 몇 번이나 보았던 장소에서 조금 다른 포즈를 하고 적당한 뽀샵으로 업로드 한 사진에 요즘에 이곳이 핫플이라면서라는 짧은 문장을 남긴다. 사람들은 이쁘다. 좋다. 나도 가고 싶다. 등의 별 뜻 없어 보이는 댓글의 행진에 또 일일이 답을 달아준다.

"그쵸 여기 진짜 좋아요 :)"

어쩌다가 내가 사는 세상은 이토록 자질구레한 삶들에 치여서 하루하루가 흘러가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높은 기상과 용기로 미래를 견인하겠다는 교가를 우렁차게 부르며 졸업했고 근현대사의 불합리와 수없이 자행된 부정부패를 청산하고 추구해야 할 우리 사회의 가치가 무엇인지 밤새 열띤 토론을 펼쳤던 날들은 힙하고 핫한 세상의 외침 '힙핫' 속에서 점점 지워지고 있었다.

힙한 친구들은 결혼도 취업도 하지 않고 자유분방한 하루의 일과를 전시하고는 만족스럽다는 내용을 적어둔다. 그들의 팔뚝에 새겨진 멋진 타투와 여유로워 보이는 옷과 달리 딱딱한 책상에 앉아 다리나 꼬는 것으로 자그마한 위로를 받고 있는 나를 보면서 괜스레 서글퍼지기도 한다. 잘 몰랐던 음악을 선곡하고 파티를 즐기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쩐지 이 세상은 거대한 욕망이 뭉쳐진 덩어리라기보다는 이 작은 분탕함이 모인 놀이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지에 익숙하고 긴 글은 읽지 않는다는 핫한 장소에서 노는 힙한 그들이 어느 책 한 페이지를 찍어두고는 '감동' 또는 '공감'이라며 올린 짧은 글을 보고 나는 허세라고 읽는다. 왜 그렇게 있어 보이고 싶은지 모르겠다. 글을 쓰거나 음악을 만들거나 독특한 행위나 타고난 자연미를 드러내면서 셀럽이 되어 영향력을 뿜어 낼 때 '나'라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안식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까. 뭐 복잡하면 이건 본능이라고 하자.

그들은 자신의 삶이 완벽하게 충족될 수 있다고 믿으며 그 믿음을 언제나 숭배한다. 그리고 주변의 충고와 유행이라고 불리는 사회적 변화는 꼰대적 발상이라고 한다. 남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는 성경 구절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은 평가받기를 거부하면서 평가한다. 만물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들의 생각과 추구하는 삶은 그 형태만 다를 뿐 누군가가 했던 것임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리고 배움은 경험의 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경험은 세계를 탐험하더라도 각각의 인상은 매 순간 다르며 그 또한 한정적이다라는 생각은 안 한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 이런 말을 드러내고 하지는 않지만 꼰대라는 것은 어떤 생각과 철학이 자신의 삶을 한정시킬 때 드러나는 습관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그것이 무식하든 유식하든 그 출처에 상관없이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힙한 꼰대처럼 보인다.

여기서,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일용할 양식과 사랑하는 가족 같은 구체적인 대상도 있지만, 포괄적인 삶의 양식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자유이다. 그것은 어디로부터 자유가 아니라 무엇을 하기 위한 자유이다. 그것은 나를 성찰하고 세상을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지혜이며 그것은 타임라인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대로 나를 놔두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핫한 장소에서 힙한 차림새로 먹방을 선보이고 다시 돌아와 읽고 쓴다. 그러고 보니 나는 힙하지 않은 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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