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eynote

여름휴가란 무엇일까

by 랩기표 labkypy

듬성듬성 비어진 자리를 보니 가슴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시원하다. 그렇다고 불편한 사람들은 아니었는데, 선배 혹은 상사라는 이름의 권력으로부터 멀어진 것만으로도 중력을 이겨낸 자의 쾌감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매미 소리가 파도처럼 째-하고 주기적으로 창을 넘어 들어왔다 빠져나간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타자 두드리는 소리.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가 어느 때보다 크게 들린다. 중력을 이겨낸 나는 가볍고 경쾌하게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한 채 글을 쓰고 있다.


회사가 권장한 휴가 기간에 처음으로 출근을 했다. 업태 특성상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자리를 비운다. 과거에 그 빈 틈 속으로 외로이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렇게 일이 많아서 어떡하냐며 위로의 맘을 속으로 중얼거리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위로를 받을 자격은 없다. 나는 바쁘지도 그렇다고 당장 이 여름 한복판에서 열렬히 뭔가를 해내야 하는 것 따위도 없다. 그저 미리 휴가를 썼기 때문이다.


휴가를 선택할 수 있다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 입사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얼마 전 흔히들 말하는 상위부서로 자리를 옮겼고, 독립된 업무와 더불어 연차와 휴가 사용이 이전보다 자유로워졌다. 덕분에 아내는 저렴하게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 적당한 날에 맞춰 비행기 표를 끊고 숙박을 예약했으며 상대적으로 덜 붐비는 시기에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여름휴가란, 뜨거운 날을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기보다는 새롭게 획득한 권리처럼 느껴졌다.


사무실에 조용히 앉아서 평소보다 더 긴 호흡으로 읽는 책은 그 내용이 더 알찼다. 간간히 아내로부터 전달받은 어린이집 방학을 맞이한 아이 돌봄의 힘든 사정은 15초 후 휴대폰 액정이 검은색으로 변할 때 함께 사라졌다.


'미안하지만, 난 지금 일하는 중이다.'


스스로 면죄부를 주고는 커피 냄새를 맡기 위해서 머그잔에 일회용 커피를 쏟아붓고 뜨거운 물을 받았다. 한 모금 마신다. 쓴 맛과 고소한 냄새가 만족스럽다. 두 팔을 벌려 어깨를 한 번 쭉 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각종 신문사와 정부기관 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기업과 관련된 각종 법적 이슈를 확인하고 기록하고 전달하는 것이 하나의 업무다. 미디어가 비추는 세상은 이렇게 탈도 많고 말도 많은데 이곳은 왜 이리 조용한 걸까. 이것들 외 눈에 띄는 기사는 읽고 블로그에 별도로 저장해둔다. 세상은 이렇게 급변하고 있는데 나는 여기 앉아서 뭐 하고 있는 것일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고 익숙한 세상도 몰라보게 변한 것 같았다. 커피를 한 모금 더 삼키고, 주류에서 멀어지지 말자. 감각을 깨우자는 생각에 눈을 치켜뜨고 긴 기사를 다시 꾸역꾸역 읽음으로써 불안을 메우다 시간이 되면 퇴근 버스를 타러 갈 것이다.


어제 퇴근 버스 옆 자리에 앉은 어느 아저씨 옷은 땀에 젖어 있었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그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밖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반팔을 입은 나의 팔이 그의 긴소매 작업복에 닿았고 그 눅눅함에 놀래 빠르게 내 앞으로 끌어당겼다. 15분. 버스로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동한 시간.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에겐 여름휴가란 어떤 의미일까.


여름휴가. 누군가는 뜨거운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 떠났다. 산과 바다로 해외로 국내로 그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나는 사무실에 앉아서 글을 쓰면서 다른 의미의 여행의 떠났다. 그는 어디에 다녀왔을까. 아니면 앞으로 떠날 예정일까. 가족은 있을까. 아니면 혼자 살까. 그에게 휴가는 어떤 의미일까.


살이 맞댄 곳에서 다시 세상이 변했다.

나는 그때, 팔을 뗄 것이 아니라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를 했어야 했다.


그때, 실시간 검색어에 폭염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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