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달고 사는 말들이 있었다. 몇 번이나 넘어졌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결국 정상에 올라선 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였다. 그것은 산 정상에서 아래로 울려 퍼지는 메아리 같았다. 그 메아리의 형태는 달라도 포기하지 마라. 꿈을 높게 가져라는 의미로 함축되어 계속해서 귓가에서 울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20대 청춘의 숲을 그 정상의 울림을 따라 헤쳐나갔고 빛나는 졸업장을 품고 이 사회에 나오게 되었을 때, 누구보다 빛나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나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했으며, 개인보다 공동체를 그리고 소의 보다 대의를 좇는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누군가에게는 허황된 망상일 뿐이라고 치부되었던 목표를 구체적인 계획으로 잘게 나누어 일상화시켰다. 회사에 취직을 하고 불철주야 열심히 내 몸과 영혼을 갈아서 꿈이라는 거푸집에 넣기만 하면 손실을 모르는 펀드처럼 만족스러운 결과로 돌아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동안의 노력은 순진하고 무모한 녀석이라는 말과 함께 화투판의 '퉁'처럼 날아가 버렸다. 투자라고 생각했던 나의 모든 정성은 결국 도박이었던 것이었다.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세상과 나 사이의 벽은 어느 때보다 높아 보였다. 외롭고 힘든 환경 속에서 힘을 보태어 주던 동료 들은 이런 나를 보고 그럴 줄 알았다며 흉을 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영혼은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만큼이나 일그러져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나는 움츠러들었고 세상을 탓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던 내가 아니었다. 나는 타인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바라보는 교만한 사람이었고, 공동의 이름으로 나를 위한 세상을 꾸미는 사이비 교주와 같았다. 그리고 내가 좇던 대의는 나의 눈을 멀게 하여 나를 통해 이익을 보려는 자들의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든 될 수가 있다. 나를 어느 고정된 틀에 쏟아붓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다. 목표 없는 삶은 나침반 없는 배라고 했지만, 주어진 길을 따르는 자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무너진 시간은 여유가 되었다. 멈출 줄 모르고 달리는 기관차 같았던 나의 삶에 작은 휴식이 되었다. 그리하여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이토록 험난한 과정을 겪고 나서야 지금의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일이란, 특정한 사물과 생각과 성과에 비추어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눈을 감고 기다리면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것임을 알았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명상이라고 불렀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결국 인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신처럼 다가왔던 숲 속 메아리들은 틀린 것이 아니라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었다. 다시 메아리가 귀가 아닌 마음을 통해 울려 퍼졌다.
나는 내가 아니었고 그것 또한 그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