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eynote

보이지 않고 사라지는 것들

by 랩기표 labkypy

보이지 않고 사라지는 것들

지루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새 나도 그들 속에서 웃고 떠들며 심지어 박수까지 치고 있었다. 처량해 보였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그저 웃기니깐 웃고, 슬프니깐 슬펐다. 그러던 순간 갑자기 덩그러니 혼자 나와서 비를 맞고 있던 어젯밤 꿈이 생각났다. 몸은 추위에 곧 무너질 것 같았지만, 그럭저럭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뛰지도 걷지도 않았다. 이런 나를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낏 쳐다보는 표정은 왠지 싫었다. 손에 쥔 우산을 머리 위로 씌우면 그만이었지만 결국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불현듯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익숙하지 않은 장소라는 것에 새삼 놀래서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는 잠이 깬 것 같았다.

그 꿈이 정확히 왜 그리고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가늠해 볼 요량 없이 나는 꽉 찬 하루의 시작을 맞이했다. 분 단위로 쪼개진 일정은 나의 의식과는 별개로 몸을 움직였다. 미팅 장소에 와서 '심플 라이프: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고 적힌 문구에 수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상대방과 간단하게 악수를 건네는 것으로 그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표정과 행동이 과장된 것 같아서 조금 웃겼다. 하지만 그의 대답을 진중하게 듣고 있는 나의 모습이 의문투성이의 문구가 붙은 유리문에 비쳤을 때 그 꿈속에 가득 차 있었던 어색함이 다시 나의 몸을 엄습한 것이다. 나는 얼른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상대방은 그런 나의 속마음을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효율적인 회의를 위한 시간 엄수는 퍽이나 도움이 되는 발상이다.

이런 의미 없는 과정들이 무언가를 완성시킬 수 있을까. 삶은 어떻게 완성될까 그리고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완성을 위한 운동. 좌우 위아래 앞뒤. 시간과 공간이라는 축 위에 그려지는 각자의 행위가 점점이 박혀 쭉 이어지게 되면, 그것은 곧 하나의 함수처럼 인간의 상(狀)이 된다. 예측 가능하고 수치화할 수 있다. 어느새 우리는 그 함수로 현실을 자각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답을 아웃풋으로 내어 놓는다. 그 순간 나는 완성된 것일까. 하지만. 그때 나의 꿈속에서 비를 맞고 서 있던 나는 누구일까. 그 축이 비틀어지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는 틀에 박힌 삶이 좋다. 그리고 해석 가능한 상황 또한 좋다. 이론적으로 다듬어진 질서 정연한 아름다움은 보편적인 타당성을 얻기에도 안성맞춤이고 후세에게 알려주기도 쉽다. 하지만. 설명되지 않은 나의 기분과 꿈과 상상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또한 알고 싶지도 않다. 활활 타오르는 불속에 넣어버리고 싶다. 태워서 사라지는 것들은 어떠한 자취도 남기지 않지만. 분명 내 머릿속에서는 존재할 것이다. 나 또한 태워서 사라지기를 원한다. 그렇다고 내가 기억되지 못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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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과 광기라는 인터넷 강의에서 앙토냉 아르토의 잔혹성에 대한 짧은 제출문입니다. "인생은 질문을 불태우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그의 말을 발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