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eynote

시대의 고고학

by 랩기표 labkypy

시대의 고고학(8/17 ~ 11/20) @고은사진미술관 - 로만 베작


처가 옆에 고은사진미술관이 있다. 가끔 지나갈 때마다 관광차 온 몇 여행객들이 담쟁이로 덮인 외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곳에서는 하나의 전시가 보통 약 2~3개월 동안 진행되기 때문에 1년에 최대 6번 정도 다른 주제의 전시를 무료로 운 좋게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가을에 어울리지 않는 폭우가 내린 후 더위가 다시 찾아온 어느 날에 보게 되었다.


작가는 사회주의 국가인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슬로베니아 출신이다. 독일에서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일하며 여러 작품 활동을 했다. 잠시 작가의 배경을 따라 가보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등 주변국들이 군주제를 폐지하고 소련의 도움으로 공산주의 연합을 형성했다. 이후 냉전시대가 형성되고 1980년대 말 소련이 붕괴되면서 슬로베니아는 독일 등의 민주주의 국가의 도움을 받아 1991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합에서 독립하여 의회를 형성한다. 작가가 1962년생이고 독일에서 활동을 했으며 한창 지식을 빨아들이는 시기에 이런 격변기를 겪었다는 사실을 통해 그가 카메라에 담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짐작을 해본다.



전시는 그의 작품인 <사회주의 모더니즘>과 <평양> 중에 몇 개를 가져온 것이었다. 동유럽과 북한 평양 건축물을 주로 찍은 작품이었다. 사진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다소 습하고 어두웠다. 그것이 색으로부터 기인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주의라는 다소 폐쇄적인 인상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작품 중에 눈에 띄는 것은 낡은 건물과 자동차들이 거리에 방치된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일상생활에 쓰이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쿠바 여행 중에 봤던 옛 오토바이 공장이 생각이 났다.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가 된 이후 주변국들과 단교가 되면서 이 공장은 자전거 공장이 되었고 그것도 여유치 않아서 결국 문을 닫고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쓰이고 있었다. 숙소 호스트였던 훌리오의 말에 따르면 수출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재료를 들여올 곳도 그리고 만들어서 팔 곳도 없어 발생한 결과라고 했었다. 닫힌 세계가 피할 수 없는 쇠퇴의 결과였다.


이처럼 생필품과 편의 시설은 노후되고 방치된 반면에 사회가 지향하는(혹은 지향하고자 하는) 사회주의 사상을 표현하는 동상과 건물은 상대적으로 웅장하고 깔끔했다. 혁명적 성과를 기리는 역동적인 조각상이 새겨진 건물을 등지고 걷는 사람들은 마치 지배자의 눈빛을 피하기 위해 눈을 아래로 깔고 걷는 것 같았다. 인민의 생활은 두 번째고, 체제 유지가 첫 번째라는 그들의 심보를 읽을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이상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규율을 만들어 통제하고 자유를 억제하여 보편타당한 이론을 주입시키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과정에서 집행자의 권력은 비대해졌고, 자본주의가 빈부로 나누어졌 듯이 지배와 피지배로 나누어졌다. 노동자를 위한 유토피아는 새로운 권력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사라졌다. 그들이 말한 인민의 평등은 모두가 균등하게 억압받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도수체조를 하는 아이들과 지도하는 교사 그리고 그 뒤에 새겨진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찬양글처럼 우상화는 문제의 시작이었다. 불완전한 상대를 두고 완벽한 존재로 둔갑하게 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부터 모순이며 그 모순을 부정하지 못하는 사회는 그 존재 자체가 부정될 수밖에 없다.



보고 듣는 것을 제한함으로 그들의 생각 또한 통제된다. 통제된 생각은 통제되었다는 사실마저 망각하게 된다. 닫힘이다. 닫힌 조직은 확장이 아닌 폐쇄고 고인 물처럼 썩을 수밖에 없다. 그들도 이것을 안다. 그들은 부분적인 개방을 통해 겨우 물의 흐름을 유지하고자 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따르기엔 부족하다. 한편으로는 그들 또한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자본주의 위기라고 하는 요즘에 북유럽의 새로운 사회주의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지속가능한 국가 시스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는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 선택의 권리를 어떻게 지키고 제대로 행사할 수 있을지 건강한 고민을 하는 몫이 남았다. 망각하는 자는 결국 지배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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