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eynote

나의 값어치는 뭘까

by 랩기표 labkypy

흔적 없이 스쳐간 시간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며칠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기분이 영 찜찜했다. 아무것도 기록할 것이 없는 일상의 무가치함 때문일까 아니면 타고난 게으름 탓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 어떤 일을 했고 응당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런 보상도 변화도 없이 무심하게 지나간 시간을 허탈하게 바라보고 있다. 순간 눈이 찌릿하게 시리고 살짝 감긴다.


시끄러운 세상은 여전하다. 대의를 좇던 인사가 가족의 아픔을 보듬겠다고 자리를 떠났고, 남은 이들은 그를 두고 여전히 사소로운 이야기들로 풍문을 날리고 있었다. 그 사이 어린 영혼은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고 사회적 타살이라는 방식의 오랫동안 다투던 이야기를 또다시 반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을 아는 것처럼 무례함은 방향 없이 툭툭 쏟아졌다. 사람은 행복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불필요한 이야기로 불편한 상황을 즐기는 것 같다. 얼핏 변태스러워 보인다.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고 느낄 때, 나는 어쩌면 병에 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두의 관심사가 나와는 별개라는 생각. 나는 다른 세상의 사람인가 하는 생각. 공감능력 부족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특정한 병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부족한 지식으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삶을 포기하거나 엉망진창으로 내버려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하루라도 더 재밌고 즐겁고 의미 있게 살려고 고민을 많이 하는 부류이다. 그런 나에게 이 사회가 던져주는 메시지, 어떻게 부를 획득하고 셀럽이 될 것이며 어떤 전략으로 권력을 쟁취할 것인가에 대한 것들로부터 나는 과연 근사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묻게 된다. 분명, 나의 눈과 귀를 필요 이상으로 장악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유의미할 것인데... 그게 뭘까.


이런 와중에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읽었다. 그곳에는 필요 이하로 다루어진 사실에 대한 것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이유 없이 죽어간 아픈 영혼들이 있었고, 치유할 수 없는 상처들에서 아직도 피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정의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할지 몰랐는데, 하마터면 주류들로부터 승리하는 것이 정의라고 이해할 뻔했는데, 작가는 부정한 의도로 감추어진 것들을 있는 그대로 찾아내고 드러내는 것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순결한 의지를 가질 수 있는 상태가 된다면 그것이 바로 정의가 아닐까 묻고 있었다. 그 책 안에도 여물지 않은 영혼의 이른 죽음이 있었다. 1980년 봄의 한가운데 광주에서 그는 스스로 목을 매지는 않았지만, 들어오는 군대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도망치지 않았다. 그 곁에 함께 했던 어느 생존자에게 누군가 왜 그 안에 있었냐고 물었다. 대답은 단순했다.


"그냥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죽음이 너무나 쉽게 다루어진다. 꽃다운 그녀의 죽음도. 권력의 후광 뒤 어둠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숨겨진 죽음도. 악착같이 지켜내는 것이 바로 목숨인데, 무너진 건물더미에서도 건져 올리는 것이 생명인데, 그런 인간의 숭고함이 이토록 저렴하게 다루어지는 세상에서 나는 과연 어떤 값어치를 할 수 있을까.


눈이 시리고 다시 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