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eynote

이야기의 시작

[육아] 이야기가 시작되다

by 랩기표 labkypy

아이와 단 둘이 있었던 그날 저녁에 조금은 가슴 벅찬 순간을 목격했다. 지상이는 모형 공룡 두 마리를 양손에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모형 공룡 둘은 지상이 손에 낚여 공중을 휘젓다가 어느 순간 서로 부딪히고는 왼손에 들려 있던 한 마리가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지상이는 쿠와~ 하는 소리를 내었고, 분명하지 않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22개월, 아직 말을 못 하는 아들이 이야기를 지어내었다는 것에 나는 대단히 고무되었다.


사람은 여러 가지로 분류되기도 한다. 정치적으로 좌우를 따지거나 경제적으로 빈부를 나누고 성격으로 내성적 외향적으로 정의한다. 세상 모든 분류 행위가 판단과 결정에 유용하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판단 과정의 분류 방법으로 반응형과 연구형을 추가로 둔다.


반응형이란, 어떤 상황을 마주했을 때 1차원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를 말한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선다. 다혈질이다 등의 핀잔을 받는 스타일이다. 1차원적이란 하나의 값을 가지는 수학적 용어라고 환기해보면 맞으면 때리고 때리면 피하고 하나의 원인과 하나의 결과만 따지고 드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뉴스나 기타 경로를 통해서 들어온 사실에 대해서 비판보다는 수용이 앞서고 정체불명의 누군가의 가이드를 따라 하거나 가십을 좋아한다.


반면에 연구형이란, 어떤 상황을 마주했을 때 다차원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를 말한다. 생각이 많다. 피곤하게 산다는 등의 핀잔을 받는 스타일이다. 어떤 사실에 대해서 연구하기를 좋아한다. 그 원인은 무엇이고 시대적 배경과 그 인물의 사정 등을 돌아보고 설명하기 힘든 부분 들은 공부하고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변수로 남겨둔다. 세상에는 완벽한 것은 없으며 어떠한 결과를 두고 원인을 유추하는 형태는 모순을 수반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따라서 많은 논쟁에서 필수적인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시기에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부류이다. 절대 선악은 없다고 믿으며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이 중 어떤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는 후자로 살아왔고 그렇게 살고 싶다. 그리고 이런 부류가 좋아하는 것은 읽고 쓰는 것이고 때로는 창조하는 것을 중히 여긴다. 그리고 이 복잡한 세상을 위로하는 것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따뜻한 이야기. 우울한 이야기. 행복한 이야기. 슬픈 이야기. 그래서 나와 너의 이야기. 세상에 모든 일들을 통해 인과관계를 따지거나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보다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찾아내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공감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이 출발은 놀이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호모 루덴스라는 개념 또한 놀이로부터 우리 인간의 문화와 제도가 출발했다고 했고, 집중력에 관련된 책은 부여된 업무를 놀이(게임)로 치환하는 능력을 높게 산다. 이 놀이가 시작되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탄생하고 같은 놀이를 즐기면서 이야기를 공감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즐거운 인생의 첫 번째 필수 항목이다.


이런 내가 지상이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직 말을 못 하는 시기라 그것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 길이가 긴지 짧은 지는 모르겠지만 눈 앞의 현상에 반응하는 단계를 넘어서 생각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낸 다는 사실이 아주 고무적이다. 앞으로 더 잘 놀 수 있겠다는 설렘이 생겼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별거 아닌 것에 잘 기뻐하는 아빠로서 기록하고 싶은 날이다.


'19. 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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