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동일 작가
우리는 자꾸 사이다 같은 발언을 좋아하는데, 소화불량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이다는 도움이 되지 않아요. 저는 우리 마음속의 아지랑이를 보자고 얘기하고 싶어요. 라틴어로 아지랑이를 ‘네불라(nebula)’라고 하는데요. 보잘것없는 것이라는 뜻도 있어요. 우리 마음속에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 그것부터 들여다보자고 말하고 싶어요. 그 안에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중용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가끔 회색분자라는 말도 많이 듣는 편인데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을 뜻한다. 이런 모습을 갖게 된 연유가 거창한 목표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치고 제대로 된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경험 때문인지 아니면 책 속 영웅들의 말년이 그리 닮고 싶은 것은 아니어서 인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어느 순간부터 분별력 없는 것을 귀차니즘이 아니라 중용이라는 단어로 잘 치장했다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 켄 윌버의 <무경계>와 <장자> 같은 철학책들은 아주 안심이 되는 친구이자 훌륭한 대변인이었다.
나와 같은 회색분자 중에(아주 주관적이지만) 한동일 작가 같은 분들이 계신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자 힘이 된다. 내 삶의 방향과 태도가 주변 사람들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단연코 틀리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에 반갑다. 비유하건데, 듣고 싶은 충고를 들은 기분이다. 세속의 자질구레함 들 위로 부유하면서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은 것 같다.
인터뷰 곳곳에는 그의 거칠고 단단한 삶이 드러나 있지만, 그 모든 것으로부터 반백살이 되어 깨닫게 된 것은 특정 형태의 것이 아니었다. 작가이자 변호사이자 사제이자 교수와 같은 그의 드러난 직과 그동안 썼던 문장처럼 유형적인 것이 아닌 무형의 것이라 대단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곧 나는 내가 회색분자로 계속 살면서 저보다 더 멋질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 묻고 있었다.
넘치는 소란 속에서 확신하는 것을 확신하지 말자고 되뇌곤 했다. 하지만 가끔 정말로 확신할 것이 세상에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항상 두 사이를 왔다 갔다 했지만, 그 현상만이 있을 뿐 절대적 기준과 자아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그의 인터뷰가 인간의 교만(신학자로서가 아닌 것 같았다.)을 자각하고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로 마무리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그는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답을 찾겠다고 하지도 않았다. 단지, "아침에 젖은 머리도 다 말리지 못하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려운 용어로 된 어려운 이야기들이 보통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질문에서 살겠다고 했다. 7/11(세븐 일레븐, 오전 7시 오후 11시)을 공부하는 '공부하는 노동자'라는 형식의 틀을 벗어던진 것 같았다. 비로소 그는 자유로워진 건 아닐까.
나 또한, 내가 누구라고 소개하는 순간 나를 옭아매는 기분을 느꼈다. 외부와 경계를 만들고 그로부터 부여받은 의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느꼈다. 어느 무리에 들어갈 때면 정체성 갈등 현상을 의심보다는 타협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것이 싫었다. 철이 없다는 생각으로 나를 길들여 보려고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수많은 '나'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다양한 직업과 활동으로부터 자유를 찾고 싶었지만 그것은 결국 나를 더 구속하는 꼴이 되었다. 오히려 나는 옅어지고 지워져갔다.
요즘에는 스스로를 어떤 특정 인물로 두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에 나와 마주친 음악과 미술과 텍스트를 조금 더 깊게 바라보려 하고 있다. 더불어 소소한 일상을 더 철저히 살려는 노력 또한 하고 있다. 그로부터 어떤 영감이 떠오르면 글을 적거나 음악을 만들어 보곤 한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면 그때그때마다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은 경험을 한다. 물처럼 흘러 어느 순간에 닿으면 샘물이 되고 대양이 되고 때로는 비가 되어 온 땅에 닿는 기분이다. 아직까지는 이렇게 평생을 살고 싶다. 어쩌면 '이렇게'라는 것도 부차적인 것이라 별생각 없이 살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그의 책을 주문을 했고, 읽으며 어떤 영감을 받을지 기대된다. 그 책이 주는 지식보다는 인터뷰부터 시작된 하나의 인물과 하나의 세상을 깊이 들여다보는 기쁨을 만끽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마음속에 일어나는 네불라(nebula, 아지랑이)처럼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솟아 오르면 놓치지 않고 싶다. 그 속에서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볼 수록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많다.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