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eynote

쓸만한 인생은 쓰게 된다

by 랩기표 labkypy

쓴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떤 삶이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완성형에 가까울 것인가 자주 묻곤 했는데, 나이가 들 수록 나는 오늘 어떤 기분으로 살고 있는가로 바뀌었다. 그것이 왜 사는지 보다 더 중요했다.


어떤 선택을 하던지 조금의 후회는 있을 것이고 더불어 기쁨 또한 항상 그럴 것이다. 선택의 문제이자 태도의 문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선택과 태도는 항상 변한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 왔다 갔다 하는 곡선 운동 속에서 어지러움과 아픔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는 삶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깨우침이라는 희열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진행형이 되려고 하니 동시에 어느 것 하나 완성된 것이 없을 것 같아서 걱정과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다시 처음으로, 모든 것은 과정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비움이 채움의 전제 조건이라는 생각이 이어진다. 그러나 정체가 알쏭달쏭해지고 형태가 흐릿해지면서 갑자기 아무렇지 않게 사라질 것 같다. 병이다. 날씨가 추워져 아침 출근길에 몸이 움츠러드는 줄 알았더니 사실 좁아진 나의 세상 때문에 불안에 떠는 것이었다.


갑자기 글을 쓴다는 것도 헛되어 보였다. 온몸으로 부딪쳐야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그것이 무엇일까. 답을 제대로 찾지도 내놓을 수도 없었다. 활자를 통해 부족한 핑계를 대신하는 것 같았다. 눈만 감아 버리면 그만일까. 컴퓨터와 노트에는 빼곡히 적힌 글이 많았지만, 넉넉히 비워진 세상 어디에도 나의 영혼과 몸으로 새겨지고 채워진 곳은 없었다. 또다시 헛되다. 무존재 혹은 무경계.

그러나 책을 읽고, 음악을 만들고, 어떤 행사의 기획을 하고, 여행을 가고... 이 모든 것들의 종점은 결국 글이 되었다. 쓰이지 않은 삶은 쓸데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쓰고 썼는데, 그 쓰기가 결국 어떤 알 수 없는 위협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과도기. 혹은 얕은 호수의 흔들림.

오랜만에 미뤄둔 일기를 여기에 적다보니 그것도 적는 행위에 대해 적다보니 그냥 이건 습관성 질병이다고 결론을 내린다. 좋은 말로 라이프 스타일이다. 멋진 스타일은 주체적인 생각과 행동에서 출발한다.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해석하는 나름의 능력이다. 그래서 다시 나는 가장 나 같은 순간으로 하루를 채우자고 다소 부끄러운 결심을 한다. 할 수 있는 한 배우고 창작하고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갑자기 새로운 사람이 되기는 글렀다.

그리고 그로부터 아무것도 얻을 게 없었으면 좋겠다. 그저 이렇게 살다가 보람이니 행복이니 도피니 망상이니 하는 것들이 전부 부질없는 객기였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오면 가족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서 웃고 떠들며 기분 좋게 놀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쓰-윽 한 자 적고 말 것 같다.

쓸만한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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