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을 마무리하며.

by 진하린

서른 중반에 뒤늦은 사춘기가 올 줄 누가 알았을까.


2025년은 2번째 발목 수술도 했고, 친구 한명과도 관계가 끊겼다보니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정말 견뎌내기 힘든 해였다. 우울감이 몰려왔고 허탈감에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흔들리는 인간관계와 스스로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모습이 마치 사춘기 소년 같았다.


이미 사춘기는 20년 전에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정말 많은 것을 시도했고, 정말 많은 것을 날려먹었다. 내가 용기를 내지 못한 탓에 날려먹은 기회들이 정말 많았다. 남에게 의존하지 말고 내가 우격다짐으로 저질렀으면 어떻게든 됐을 일들을, 그저 뒤에서 고민만 하다가 허비해버린 느낌이라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냥 훌쩍 떠나볼 걸, 그냥 겁나도 질러볼 걸, 뭐 그렇게 잃을게 많다고 현실에 안주하며 지냈던 걸까? 회사를 뛰쳐나올 때의 호기로움은 어디로 간 걸까?


물론 이런 후회따위 의미 없는 걸 안다.

내가 뭘 하든, 하고 있지 않든 시간은 어떻게든 흐른다.

그것이 시간의 무자비한 점이고, 무서운 점이다. 그리고 나는 이 무자비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연약한 한 명의 인간일 뿐.





미래라는 신기루


30대 중반쯤 되면 사람 관계에 흔들리지 않고, 홀로 단단히 서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고, 짝꿍도 한 명 있고, 운이 좋으면 자식도, 집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미래를 그리는 것은 언제나 내게 부질없는 짓이었고, 이번에도 여전히 그러했다.


나는 미래를 그리는 능력이 유난히 부족했다. '이렇게 할 거야'라고 목표를 설정하고 달려봐도 대체로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믿음을 보답받기 전에 상황이 변하거나, 다른 미래가 다가왔다.


긍정적인 점은 내가 첫 직장이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곳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고, 부정적인 점은 내가 오래도록 바라왔던 것들 대부분을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황금빛 미래를 그리는 것보다는 현실에 충실하는 것이 내게 더 알맞았나 보다.

그래서 미래만 그리고 현실을 보지 못하는 친구와 더이상 발 맞추어 나갈 수 없었나 보다.






초등학생의 셈법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어릴 적 나는 '현실적'으로 생각하려고 했다.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았으나, 고작 초등학교 6학년일 때부터 '작가'는 돈이 안 될 것 같아서 다른 재주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열두 살배기 아이가 벌써 꿈에 가격표를 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중학교 때는 좋은 성적을 받았고, 그대로 갔다면 무난하게 적당한 직장을 구하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꿈꾸던 집도 차도 가정도 이뤘을지 모를 일이지.


하지만 내 인생은 고등학교 때 큰 굴곡을 맞이했고, 결국 돌아서 가는 선택을 하게 됐다. 다행히 손재주가 있었고, 좋아하는 것에는 지치지 않는 열정이 있었기에 뒤늦게 미대입시를 시작했음에도 디자인이라는 전공을 갖게 되었고, 덕분에 직업도 얻게 되었다.


어쨌든 글을 쓰는 지난한 일보다는, 디자인이라고 하는 약간이나마 더 현실적인 직업을 갖게 되었다.

적어도 이쪽은 수요가 조금 더 있으니까. 그러니까 괜찮다고 믿었다.


세상과 타협하는 제법 공부 잘했던 학생은 레일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결국 미술이라는 차선책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은 미술뿐만 아니라 다른 창작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글을 쓴다느니, 앱개발을 한다느니 대학생 때 해볼만한 시도를 지금 하겠다고 난리치고 있다.


그 때의 '현실적 계산' 따위는 대체 왜 했던 걸까?

어차피 좋아하는 거 할 거면서.






비대해진 자아


21년 퇴사하기 1년 쯤 전, 현실에만 목을 매는 것이 맞는가라는 생각이 뒤늦게 찾아왔다.

삼십 대가 넘어가니 자아가 너무 비대해졌었나보다.


마치 뒤늦은 사춘기를 맞이해버린 것만 같았다.


내 목소리를 내고 싶었고,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점점 자라났다.


평생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인기 있어 본 적도 없었고, 내가 그나마 '팬'이라는 고마운 사람들을 맞이했던 것도 결국 내가 일했던 회사라는 후광 덕분이었기에 실질적인 나 자신을 세일즈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런 주제에 자아만 비대해져서, 나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주진 않을까, 나라는 인간에 대해 누군가는 흥미로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으며 내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정작 게임 개발하면서 7년간 내 개인 디자인 포트폴리오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역시나 인기는 없지만.


그렇게 1년 가까이 글을 계속 올렸다. 비록 1-2달 쉬어가는 기간도 있어서 꾸준하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짬이 날 땐 무조건 글을 쓰려 했다.


꾸준하지 못한 빈도, 트렌드에 맞지 않는 장문, 일관성 없는 다양한 장르 탓일까? 조회수는 박살 났지만, 나름 나를 꾸준히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는지, 글을 보신 분들 중 절반은 라이킷을 눌러주셨다.


그 덕분에 평균 100 이하의 조회수임에도 낙담하지 않고, 꾸준히 글을 써올 수 있었다.

실험적인 글들과 부족한 글솜씨, 비정기적인 연재에도 누군가는 내 글을 봐준다는 사실이 고마웠기 때문에.


내가 어느 날 병으로 급사를 하든, 별볼일 없이 늙어 죽든, 나를 기억하고 내 글을 좋아해 준 사람이 존재했다고 믿을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히 감사할 거라고 다독이며 살아갈 수 있겠지.






글을 쓴 주가 안 쓴 주보다 많았던 해


작년에는 나름 열심히 글을 썼고, 중간에 공백이 있기도 했지만 1년 중 글을 쓴 주가, 안 쓴 주보다 많은 첫 해였다. 사업병 걸린 친구와의 사업 놀이에 무의미하게 시간을 쓰면서도 나름대로 이루어낸 성과였다.

그저 악착같이 나라는 사람의 자취를 남겨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냥 소리없이 사라지기 싫어서, 그냥 글을 쓰고 싶어서 썼다.


비록 그 글들이 내 밥벌이에 도움이 된다거나, 이름을 날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기에는 영향이 미미하겠지만, 그래도 25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적지 않은 위안이 된다.


곳간에 뭐라도 쌓아놨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2026년에 내가 하고싶은 것.


되도록이면 매주 2개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연말과 연초에 지키지 못했다.

2025년이 끝나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보신각 종소리도 일부러 듣지 않았는데, 그런 주제에 일상을 루틴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것은 다소 부끄러운 일이다.


나라는 인간이 원래 루틴이라는 것이 일정하지 않고, 그 때, 그 때 관심가는 것에 열중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은 꾸준히 쓰고 싶었다. 그저 가라앉지 않게, 수위를 유지하면서 떠 있기만 해도 되는 건데 그게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

너무 고난했던 한 해였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25년이라는 해는 나라는 사람의 마음 취약한 곳에 뿌리를 내려버려서, 떼어낼 때 고통을 동반할 수 밖에 없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내가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려 할 때, 계속 고통이 머리를 혼탁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혹은,

내 글에는 댓글도 따로 안 달리는데, 심지어 광고계정의 댓글에 지쳐서 잠시 짜증이 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소통을 하고싶은데, 내 글에 달리는 몇 안되는 댓글은 광고계정일 뿐이라는 그 사실에 유치하게 짜증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뭐, 어느 쪽이든 내가 글을 쓰지 말아야할 이유는 없었다. 결국 핑계고 징징거림일 뿐이다만.



사실 새해를 맞이하는 글도, 작년을 마무리하는 이 글도, 썼다가 지웠다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하고픈 말이 제대로 전달되는 느낌도 없었고, 쓰다보니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써야한다.

비록 정기적인 집필은 힘들지라도

생각했던 것들은 전부 써야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앞으로도 어떻게든 계속 글을 써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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