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서운 저주에 걸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저주에 걸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광기에 물든 사람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매진하는, 긍정적인 광기.
오타쿠 같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단순 서브컬처를 좋아해서 오타쿠라는 표현을 쓴 건 아니다.
그저 좋아하는 것에 미쳐서 일상이 고달프고 힘들더라도 절대 놓지 않을, 꺼지지 않는 장작이 마음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오타쿠들은 다음 시즌 애니메이션을 봐야해서 자살하지 못한다는 우스개가 있지 않은가.
삶의 동력이 자신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 때문인, 순수한 광기를 띈 사람들.
그 대상이 이성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나는 그저 그들의 광기 어린 열정을 사랑할 뿐이니까.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내게도 그런 광기가 깃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더 열정적으로 사랑해야지, 더 열정적으로 살아가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나를 좋아하진 않는다. 싫어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들은 너무나도 확고한 자신만의 '사랑'이 있기에 나처럼 어중간한 사람을 딱히 선호하진 않는다는 쪽에 가깝겠지.
그래서 그들에게 나는 그저 팬보이에 가깝다. 일방적인 사랑을 보내고, 그저 응원할 뿐인 평범한 빠돌이.
그래서 이 사랑이 참 가슴 아프고 애틋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런 이들 몇몇과 친구를 하고 있긴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절절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나에 대해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것도 좋아하고 저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일상을 지루하게 살지는 않는다. 쉼 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한다. 새로운 것에 관심이 생기면 일단 뛰어들고 본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 끝까지 파지 못한다. 재미있는 것이 생기면 그쪽으로 관심이 옮겨가고, 또 다른 재미가 생기면 또 옮겨간다. 무언가를 완성하기 전에 흥미가 식어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니까 나는, 사실 다재다능한 게 아니라 어수선한 사람이다.
부족한 나를 채우고 고독한 시간을 메우려고 발버둥 치는 것뿐이다. 한 가지에 미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처럼 되고 싶다고 동경하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한다.
관심사만 태평양 같이 넓고, 깊이는 샬레만큼 얕아서, 그저 겉보기에만 할 줄 아는게 많아보이는 그런 사람.
재미있게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나를 다르게 본다.
그들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항상 지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구나. 그 무한한 호기심과 활동력이 참 부러워.'
내가 이것 저것 건드리며 사부작거리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는 다재다능함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가라앉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겐 이 약동마저 활력으로 읽히는 것이겠지.
나를 좋아해주는 그들은 나보다 착실하다. 나보다 안정적으로 삶을 살아간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해내고, 계획대로 움직이고, 무리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이미 넘치도록 잘 살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내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냐고 묻는다. 좋은 말로 칭찬을 해주기도 한다. 한 점으로 뭉치지 못하고 무지갯빛으로 쪼개져버린 내가, 자신들의 삶에 적당한 활력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그들이 고맙다. 나 같은 어수선한 사람을 좋게 봐주고, 조언을 구하고, 칭찬까지 해주니까.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정말 미안하게도 나는 그런 그들에게 마음이 가지 않는다.
그들의 안정적인 삶이 내 눈에는 자꾸 무채색으로 보인다. 강렬한 원색—빨강, 파랑 같은 선명한 색에만 눈이 가는 내게, 그들의 차분한 회색은 시선을 붙잡지 못한다.
그들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는 건 안다. 나를 아껴준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그들을 향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원색의 사람들처럼 활활 타는 마력이 없어서일 거다. 너무나도 안정적으로 차분하게 식어있어서, 내 눈이 반응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내 고장난 눈은 그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정말 미안하고 무례한 말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이게 나의 한계다.
아- 나는 광기를 사랑하는 저주에 걸려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걸 뒤집어 생각하면, 내가 좋아하는 그 '광기' 있는 사람들도 나를 이렇게 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안정적인 그들을 무채색으로 보듯, 그들은 내 어수선함을 그렇게 볼 것이다. 그들에게 나는 무엇 하나 끈기있게 파지 못하는 애매모호한 사람일 뿐일 것이다.
조금만 역지사지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인생은 참 불공평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에 청아하게 미쳐 있고, 나를 보지 않는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차분하고 올곧게 살아가지만, 내가 보지 않는다.
원색의 사람이 나를 볼 날이 올까?
아니면 내 저주받은 취향이 언젠가 현실과 타협하고 차분히 사라져줄까?
너무 속이 답답하다.
그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평범한 성격이면 이렇게 고통받을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